가는 빗발로 비가 내리고 있다.
어두컴컴한 서재 책상 앞에 평소처럼 앉아 나는 눈앞에 있는 단풍나무의 말로 못 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다.
정말로 아름답다.
아주 선이 얇게 갈라진 어린잎의 모임.
잎 하나하나가 모두 옅은 콩색을 한 채로 둥글게 휘듯이 모인 표면에는 비에 젖은 둔은색과 짙은 자색이 풍기고 있다.
가는 잎 끝에 점점 모여가는 작은 물방울 빛.
잎에 중첩되어 만들어진 향기로운 그림자.
입에 전해지지 못할 정도의 부드러움과 약한 빛을 가진 꺼림칙할 정도의 둥근 윤곽은, 안개 낀 것처럼 비 내리는 하늘과, 주위의 검은 선과 구별되어 있다.
나는 가만히 지켜본다.
끊임없이 주륵주륵……주륵주륵……내리는 비는 저 나무 위에나 어떤 나무 위에나 똑같이 내리고 있건만, 단풍나무의 어떤 부분에도 보이지 않는 미동마저 일으키지 않은 채 무서운 조용함을 고수한다.
이 침착한 광경이란.
저 생기 넘치는 단풍이 꿈적도 하지 않는 건――
만약 손가락을 얹으면 따스한 핏기운이 느껴지는 인간의 피부처럼 탄력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생생한 풍부함'을 가진 나무는 내게 식물보다는 오히려 동물――마치 여자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아름답다.
너무나 조용하다.
그 주위서 마치 동떨어진 듯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까지 모두 저 몸의 근처서 울리고 움직이며 싸우는 현재의 모습서 벗어나 비도 내리지 않고 빗방울도 떨어지지 않는 굉장히 조용한 세계에 자리한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애정과 열린 마음으로 나무를 보는 사이에 밀어낼 수 없는 감격이 서서히 마음 안쪽에서 뿜어져 저 잎끝에서 가장 반대편의 잎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펼치게 되었다.
이 나무는 조용하다.
내 마음도 조용히 내려앉아 있다.
그렇건만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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