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전쟁이 벌어져준다면――나는 스무해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가로서의 나는 내 평생 속에 전쟁이 있는 걸 반쯤은 막연히 하지만, 반쯤은 명확히 희망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스탕달을 읽을 때마다 나라면 전쟁을 이렇게 묘사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때문에 어떻게든 평생 속에서 전쟁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은 평화를 사랑하는 동물이기도 하나 갈등을 피하고 싶은 동물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은 갈등 속에서 드러나며 평화는 그 후의 결론으로 나오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이란 개인간의 싸움보다 인간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외교 속 책략에 비하면 개인간의 책략 따위는 별 볼 일 없을 따름이다. 개인은 법률이나 의리, 인정 같은 여러 인연에 따라 본성 노출에 속박이 가해지나 국가의 속박은 경미하며 승자는 만능이다. 국가의 이름을 건 음모는 개인의 음모보다 훨씬 인간미로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인간을 묘사하고 싶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통해. 그걸 위해 전쟁을 보고 싶었다. 타인이 기록한 전쟁이 아닌 내 눈을 통해 전쟁을 보고 나 자신이 아는 인간의 한계까지 들여다 보고 싶었다.
나는 과거에 전쟁을 마주한 수많은 문인들을 부러워 했으며 나 자신이 그렇지 않단 사실에 적의를 품기도 했다.
내 염원은 이뤄졌다. 나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을 헤짚으며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전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결론으로 쓴 게 이 소설이다. 말하자면 20년 동안의 염원이자 노림수기도 했다.
이 소설은 아마 다섯 장으로 나뉘어 작중 시대는 종전 후까지 이어지리라.
반 년이나 일 년에 한 장씩 써서 대략 삼 년 이내에 끝낼 생각이다. 작중 인물은 전부 가공이며 전시의 내각 총리 대신은 토조도 아니며 코노에도 아니다. 전쟁에 이르는 과장, 책략과 내전 모두 완전한 가공이며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50년 4월 8일 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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