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뜻으로 태어난 게 아니니 아버지나 어머니를 고를 수 없었다.
그런 제한은 인간의 평생에 뒤따르는 법으로 인간은 도리 없이 무언가 하나를 고르더라도 생활 기반이란 건 본인의 뜻과 무관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이 던진 주사위로 태어나게 되니 우리의 문화가 큰 소리로 자유 의지 같은 걸 외쳐도 사상누각일 뿐으로 껍질을 벗기고 지식의 끝에 이르면 부자유로 환원된다. 연애결혼을 진보적이라 여기며 맞선 결혼을 바보 취급하나 연애 따위 별 볼 일 없다는 게 언젠가 간파되면 남이 떠멱여준 맞선 결혼이야말로 그 스릴 때문에라도 백 년 뒤 문화인의 장난감이 될지도 모른다.
내 경력이라 해봐야 니이가타시에서 태어나 지정된 초등학교 중학교에 올랐고 이 중학교에서 쫓겨났다. 이즘부터 내가 고른 필연의 길인 셈인데 역시 남이 굴린 주사위가 뒤따라 붙으니 내 이력서 같은 약력은 주사위를 던지는 악령의 비웃음을 사는 거 같아 내키지 않는다. 때문에 이는 말하지 않기로 하겠다.
내가 초등학생일 적에 야구공을 쫓던 눈과 코 사이를 껍질이 벗겨진 원반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으로 내가 중학생일 때, 그라운드에 서있었더니 뒤에서 선수가 던진 공이 날아와 내 다리 사이에 꽂혔다. 나는 지금도 감기에 걸려 고열이 나면 이 원반에 쫓기곤 한다.
스무 살일 때 홀로 등산을 가서 계곡 사이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어, 이거 죽겠네 싶었다. 슬프진 않았다. 사실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 정신이 들었다. 계곡 안에서 나는 물 위로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가방 덕에 산 셈이다.
스물한 살일 때, 책을 읽으며 시내전철에서 내렸더니 자동차에 치였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서 머리부터 떨어졌으나 유도를 배운 덕에 먼저 손을 짚으며 떨어졌기에 두개골에 금이 간 정도로 그쳤다.
나는 스물일곱까지 동정이었다.
스물일곱여덟 쯤부터 3년 정도 남의 여자였던 여자와 생활했는데 이는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라 원반이니 자동차니 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질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에 암막이 내리고 만다.
그 후엔 되도록 위험한 일이 없게 지내 오늘까지 오래 살았으나 이 마음가짐은 요컨대 쿠메의 선인으로 늘 생명의 위기에 쫓겨 산다는 건 자백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술은 스물여섯부터 마셨는데 아직 십오 석도 마시지 못 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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