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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고독지옥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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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었다. 어머니는 본인의 큰숙부께서 들었다고 한다. 이야기의 진위는 알 수 없다. 단지 큰숙부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이런 일도 제법 그럴듯하다 생각할 따름이다
 큰숙부는 소위 마당발로 통하는 사람으로, 막부말 게닌이나 문인 사이에 지인을 여럿 두고 계셨다. 카와타케 모쿠아미, 류카테이 카네타즈, 젠자이 안에이키, 토에이, 9대째 단쥬로, 우지 시분,  미야코 센츄, 켄콘바우 료사이 같은 사람들 말이다. 개중에서도 모쿠아미는 "에도사쿠라쿄미즈세이겐"에서 키노쿠니야분자에몬을 쓸 때에 이 큰숙부를 참고로 했다. 작고하신지 오십 년 가까이 되었지만 살아 계실 적에는 금기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신 적이 있으니, 지금도 이름만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성은 사이키, 이름은 토지로, 시인으로서의 필명은 카우이, 속칭은 야마시로카시노 츠토란 남자이다.
 그런 츠토가 어느 날, 요시와라의 타마야에서 한 승려와 친해졌다. 혼고 부근의 한 절의 주지로, 이름은 젠쵸라고 했다고 한다. 그 사람 또한 손님으로, 타마야의 시키기라는 오이란과 친했었다. 물론, 승려에게 육식이나 아내를 들이는 게 금지되어 있을 시절의 일이니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법은 없었다. 노란 비단 기모노에 쿠로바부타에를 덧입은 채 의사라고 말하고 다닌그런 사람과 친해졌다.

 우연이란 건 등불이 켜진 어느 밤, 타마야 2층에서 츠토가 변소에 다녀오던 길에 별생각 없이 복도를 지나고 있자니, 난간에 기대어 달을 올려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머리를 밀고, 키가 작은 편이며 마른 남자였다. 츠토는 달빛으로 돌팔이 의사 치쿠나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나가며 손을 뻗어 귀를 살짝 잡아당겼다. 놀라서 돌아보는 걸 웃어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 본 얼굴을 본 츠토는 되려 놀라야만 했다. 민머리인 걸 제외하면 치쿠나이랑 닮은 점 하나 없었다――상대는 이마가 넓은 주주에 미간이 굉장히 좁았다. 눈이 크게 보이는 건 살이 처져 있기 때문이리라. 왼족 뺨에 자리한 커다란 점은 그런 와중에도 똑똑히 보였다. 그런데다가 광대뼈가 높았다――이만한 얼굴이 띄엄띄엄, 바쁘게도 츠도의 눈에 들어왔다.
"무슨 볼일이지" 민머리는 성이 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어느 정도 술기운도 두르고 있는 듯했다.
 미리 적는 걸 잊었는데, 이때 츠도는 게이샤 한 명과 호우칸[각주:1] 한 명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츠토가 사과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때문에 호우칸이 츠토를 대신해 손님에게 사죄를 했다. 그러는 동안 츠토는 게이샤를 데리고 재빨리 제 자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마당발이라도 수습하기 어려웠던 것이리라. 민머리 쪽은 호우칸의 사죄를 듣고는 곧장 기분이 풀어져 크게 웃었다고 한다. 이 민머리가 젠쵸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 후, 츠도가 과자를 들고 사과하러 갔다. 상대도 마음에 걸렸는지 일부러 보답하러 왔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 싹텄다. 물론 싹텄다 한들, 이 타마야 이층에서 만날 뿐으로 서로 왕래는 없었다고 한다. 츠토는 술을 한 방울도 하지 않았는데 젠쵸는 대주가였다. 더군다나 젠쵸는 사치스러웠다. 하물며 호색에 더 심하게 빠진 것도 젠쵸 쪽이었다. 츠도 본인이 이래서야 누가 스님인지 모르겠다고 비평할 정도다――몸집이 크고 뚱뚱하며 용모가 추했던 츠토는 긴 앞머리에 은사슬로 된 목지갑을 차고 다녔고, 평소에는 좋아하는 감색 면포옷에 세 척의 하얀 목재를 넣어 다녔다는 남자였다.
 어느 날 츠도가 젠쵸와 우연히 만났는데, 젠쵸는 화살나무 시카케를 덧입은 채 샤미센을 치고 있었다. 평소부터 혈색이 나쁜 남자긴 했지만 그날은 유독 더 했다. 눈도 충혈되어 있었다. 탄력 없는 피부가 이따금 입가에서 경련했다. 츠토는 곧 무어라 걱정이라도 있나 싶었다. 자신 같은 거라도 괜찮다면 부디 그러고 싶다――그렇게 말해 보았지만 이렇다 밝히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여느 때보다도 말수가 적어져 화제가 종종 끊기고는 했다. 그때 츠토는 이것이 창관을 찾는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권태(ennui)라 해석했다. 술과 여자를 거리낌 없이 즐기는 인간이 걸리는 권태가 술과 여자로 치료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두 사람은 여느 때보다 더 깊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젠쵸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불설에 따르면 지옥도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근본지옥, 근변지옥, 고독 지옥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심지어 남첨부주하과오백유선나노유지옥 같은 것도 있다니, 대부분은 옛날부터 지하에 있었다는 모양이다. 단지 개중에서 고독지옥만은 산간, 광야, 풀숲, 공중 어디에도 아무렇지 않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눈앞의 경계가 그대로 지옥의 간고를 드러내는 꼴이다. 자신은 2, 3년 전부터 이 지옥에 떨어졌다. 어떤 일이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지 못 했다. 때문에 항상 하나의 경계에서 하나의 경계를 넘어가며 살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지옥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경계를 바꾸지 않으면 더 괴로워진다. 때문에 역시나 하루하루의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생활을 해간다. 하지만 끝내 그것마저 괴로워지면 죽어버릴 수박에 없다. 과거에는 괴로워도 죽는 건 싫었다. 지금은……
 마지막 말은 츠토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젠쵸가 다시 샤미센을 조정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기 대문이다――그 이후로 젠쵸는 타마야를 오지 않았다. 방탕 스님의 그 뒤 행적은 누구도 알지 못 했다. 단지 그날 젠쵸는, 사이키의 곁에 금강경 소초 한 권을 두고 갔다. 츠토는 그 표지 뒤에 "마흔 먹고야 제비꽃 위 이슬을 깨달아버렸네."하는 자작 하이쿠를 덧붙였다. 이제 그 책은 남아 있지 않다. 하이쿠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으리라
 안세이 4년[각주:2] 경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지옥 어쩌고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서재에서 보낸다. 그런 생활인 만큼, 큰숙부나 젠쵸 스님하고는 거리가 먼 세계에 살고 있을 터이다. 또 관심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도쿠가와 시절의 이야기나 그림에 대단한 관심을 지니진 않았다. 심지어 내가 품은 어떤 마음은 자칫 고독지옥이란 말을 통해 자신의 동정을 그들의 생활에 투과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부정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어떤 의미에서는 나 또한 고독지옥에 괴로워하고 있는 한 사람이니까.

  1. 술 자리에서 분위기를 맞추는 사람 [본문으로]
  2. 1857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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