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은 죽은 줄만 알았다. 눈앞이 어두워져 자식이나 손자가 울먹이는 소리가 점점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분동이 발끝에 매달린 것처럼 몸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싶더니 불쑥 깜짝 놀라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베개맡에 도사 여옹이 태연히 앉아 있었다. 주인이 얹어 놓은 기장에도 아직 열이 돌지 않은 듯했다. 노생은 청자 베개에서 고개를 들어서는 눈을 문지르며 크게 하품을 했다. 한단의 가을 오후는 잎이 떨어진 나무 끝자락을 빛내는 볕이 있음에도 살짝 쌀쌀했다.
"일어나셨나요." 여옹은 수염을 씹으며 웃음을 죽이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네."
"꿈을 꾸셨지요?"
"꾸었지요."
"어떤 꿈이셨나요."
"정말로 긴 꿈이었습니다. 시작은 청하의 최씨라는 여성과 함께였습니다. 아름답고 정숙한 여성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나는 사이 진사 시함에 급제하여 위남의 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감찰어사나 기거사인지제고를 지나 승승장구하여 중서문하평장사가 되었는데, 누명을 쓰고 죽을 뻔한 걸 살아 환주로 흘려 갔습니다. 그로부터 대여섯 년 지났을까요. 이윽고 누명을 풀은 덕에 다시 소환되어 중서령이 되어 연공국에 봉후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먹을만큼 먹었습니다. 아이가 다섯에 손자가 몇 십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죽었지요. 기억하기론 여든은 된 듯 합니다."
여옹은 의기양양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럼 굴욕도 성공도 한 번씩 맛본 셈이군요. 그거 다행입니다. 인생이란 건 당신께서 꾼 꿈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니까요. 이걸로 인생을 향한 당신의 집착도 좀 식었겠지요. 죽음의 이치도 사생의 정을 알면 보잘 것 없어 집니다. 그렇지 않나요?"
노생은 속이 타는 듯한 심정으로 여옹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상대가 못을 박는 동시에 청년 다운 얼굴로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꿈이니 더욱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 꿈이 깬 것처럼 이 꿈 또한 깨는 날이 오겠지요. 저는 그 때가 올 때가지 진짜로 살았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살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렇지 않나요?"
여옹은 얼굴을 찌푸린 채로 옳다 그르다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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