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속 야에코를 이야기하면 굉장히 좋을 때와 그 정돈 아닐 때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직업 배우 중에서는 확실히 가장 '젊은 여성'이다. 야에코를 두고 다른 사람은 없다 말할 수 있다.
배우로서의 자질, 재능, 용모의 은혜를 많이 받고 그 고양을 통해 신파와 신극 사이를 오가면서도 그중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양쪽의 장점을 나란히 갖춘 야에코에게 오늘날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의 거리낌 없는 주문을 말하자면 야에코는 지금의 경지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지금 야예코의 연기 기반은 센티멘탈에 있다. 그리고 현재의 야에코 팬은 이를 갈채하며 환영하고 있다. 야에코는 먼저 그 팬과 인연을 끊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선 야에코는 결코 현재의 야에코 이상을 드러낼 수 없으리라. 그리고 진보적인 색채를 주기 위해 이지적인 예풍을 갖춰야만 한다.
일부 사람은 야에코의 예풍에 차가움이 있다 말한다――내가 말하자면 그건 야에코의 '거들먹거림'이다. 현재 이 '거들먹거림'은 하나의 매력이며 야에코의 예풍에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역할에 따라 다르다. 야에코가 자신의 역할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선 이 자그마한 '거들먹거림'을 벗어던져야만 한다. 이 자그마한 '거들먹거림'은 야에코를 하나의 틀에 담아버리고 만다.
야에코는 현재의 여배우 중에선 현대적인 여성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건 좁은 의미의 현대적이며 본질적으론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현대에도 존재하는 여성이나 결코 현대를 대표하는 여성일 수는 없다. 하지만 야에코는 현대를 대표하는 여성이 될 수 있는 배우이다. 또 야에코에게야말로 그걸 바랄 수 있다.
야에코는 이제까지 소위 소녀 역할만 해왔다. 나이의 탓도 있고 한사코 젊은 예풍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제 그곳에서 한 발 나서서 마담 역할에 들어가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여배우의 연령을 생각하는 건 확실히 우울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야에코의 '아름다움'이란 매력도 결국은 져버리리라 생각해야만 한다. 현재의 '아름다움'이 한사코 이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이를 넘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다. 야에코는 그걸 알아야만 한다. 야에코는 지금의 '아름다움' 이외에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할 여배우가 아니다.
야에코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현재의 팬에게 안주하는 일이다. 현재에 만족하는 일이다. 더욱이 거리낌 없이 말하자면 그건 제국 극장 여배우들과 같은 운명에 빠지는 일이다.
먼저 지금을 벗어던져라――이 한 마디를 야에코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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