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팔백구십오 년, '집게(Les Tenailles)'를 발표해 일약 극단의 주목을 받은 폴 에르뷔에는 천팔백구십칠 년 '사람의 규정(La Loi de l'Homme) 삼막이 국립극장의 상연목록에 더해진 행운(?)을 등에 업고 다음으로 천구백일 년 보트뷜좌의 '횃불(La Course du Flambeau)' 사막의 훌륭한 무대적 성공을 통해 시대적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자유극장 운동에서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 소설가로서 얼핏 사실주의적 경향을 가진 그는 그 희곡을 통해 개념적 무대 표현을 시도하고 이 점이 되려 실사만능의 당시 극단에 한층의 신선미를 준 건 말할 것도 없다. 그에게 상을 준 사람이 전통주의를 표방하는 비평가였던 점도 주목해야만 한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항상 어떤 '문제 해결'에 있다. 그가 그리는 인물은 하나 같이 어떤 '원칙의 꼭두각시'이다. 사건 추이는 어디까지나 논리적이며 인물 성격은 너무나 전형적이다. 그는 법률의 결함, 제도의 불합리, 도덕의 모순, 인습의 오류를 공격하기 위해 모든 요건을 구비한 인물과 그 관계와 순서 올바른 사건을 상상한다. 무대 위에는 '생명의 연쇄'가 없는 대신 '윤리의 위협'을 통한 끝없는 감동이 있다. 대화는 기극히 어색한 문어체이며 뉘앙스와 운율이 빈곤하지만 그러면서도 논리정연하며 흐릿함이 없다. 자연주의말기의 '비외극'에 눈살을 찌푸렸던 당시의 우경 비평가가 에르뷔에의 작품에 고전극의 단소함과 엄숙함이 있다 지적한 건 비단 그 예술적 수법만을 논하는 게 아니리라.
이는 요컨대 극작가로서의 그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건 '시'와 '기지'이나 그는 철두철미 차가운 변증가인 동시에 상냥한 도덕가이며 그 차가움으로 사람을 쏘고 그 상냥함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호흡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게 이 희곡이 가진 포퓰러리티이다.
명배우 레잔 부인의 지예는 여주인공 사빈을 불후의 존재로 만들었다. 이 사실은 그야말로 연극사상의 기적이다.
그 외에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건 그가 외교관이란 점, 동년배를 제치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는 점, 굉장히 공명심이 강한 남자였단 것――이 정도이다.
'횃불'은 십수년 전 '불꽃'이란 제목으로 번역한 적이 있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 작품에 대한 사고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 해도 불국근대극의 역사적 연구에서 폴 에르뷔에의 이름을 제외하는 건 부당한 일이며 극작가 에르뷔에의 작품에서 그 대표작으로 '횃불' 한 편을 고르는 건 아마 자연스러울 거란 견지에 자신의 모든 걸 소비한 공력을 헛수고로 삼고 싶지 않다는 미련도 더해져 오늘 이를 본 전집에 더하는 걸 승낙하였다.
'고전 번역 > 키시다 쿠니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단지 일행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1.14 |
---|---|
신협극단을 보다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1.13 |
공개장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1.11 |
궤도(침묵극)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1.10 |
모리모토 카오루 군 - 키시다 쿠니오 (0) | 2022.11.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