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나카 씨.
일본의 신극 개척자 중 한 명. 먼저 당신을 이렇게 부르도록 허락해 주시지요.
나는 신극 협회를 위해 쓴소리 한 마디를 해보려 합니다. 당신의 재능과 당신의 용기를 신뢰하는 자는 일본신극단 특히 호극가 중에 저 하나만이 아니라 봅니다. 당신이 경제적 어려움과 싸우면서도 우리가 바라던 하나의 극단, 현대극을 정기 상연할 장소와 사람을 소유한 신극단 실현에 도달한 것은 오늘날 우리 극단계가 가장 주목해야 할 일이라 봅니다.
게다가 그 첫날은 또 어떨까요. 관객이 고작해야 서른 명 언저리. 초대장 발송이 늦어졌단 이유――아뇨, 그건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세간이 모르는 거지요. 당신은 닷새 동안 매일 서른 명씩 오면 되는 거 아니냐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와야만 하는 겁니다. 단지 모르는 거지요. 왤까요. 물론 선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광고비요? 그거입니다, 당신께 말하고 싶은 게.
우리 보고 가만히 있으라 하고 싶으실까요. 우리는 조금도 힘이 되지 않을까요. 척 보기에 당신이 그럴 마음만 먹으면 어떤 방법이든 신극협회의 후원을 흔쾌히 맡아줄 사람이, 그리고 그 후원이 여러분이 하는 일에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 줄 사람이 꽤나 많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어려운 요즘이라도, 아무리 자신만 만족하면 되는 시대라도 당신의 진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 정돈 있겠지요. 신문의 삼행 소개, 예술란의 뒷이야기, 이것만으로도 당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저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유극장 첫 번째 시연날입니다. 이야기는 프랑스 것이지요. 자연주의의 대가 졸라 옹은 자신의 단편이 각색 상연되는 걸 보러 아내와 함께 자그마한 오두막을 찾았습니다. 막이 내려가자 대뜸 무대 위로 뛰어올라 "음, 좋아, 아주 좋아. 안 그런가, 엔닉(이는 제자입니다)――안트아누란 건 자네인가"하며 놀라는 배우를 부여잡고 "내일 또 오지"하고 말했습니다. 자유극장은 공쿠르, 도데, 루난을 훌륭한 후원자로 만들었습니다. 루메틀, 보엘 등의 명비평가를 호의 있는 편달자로 두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젊은 작가가 모였습니다. 안트아누는 오만한 남자입니다. 그는 첫 공연 전날 밤, 먼저 나서 몇 백 통의 안내장을 사람들의 현관 앞에 두었습니다.
이 젊은 감격을 당신에게 요구하는 건 무리한 일일지 모릅니다. 당신은 밀어붙이지도 않고 밀리지도 않는 일본의 유수한 무대 감독입니다. 예술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맨손으로 일어난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지켜보게나"로는 안 됩니다. "같이 하자"여야죠.
당신의 예술가 다운, 동시에 생활의 투사 다운 '지켜보게나'는 아주 비장합니다. 하지만 '한 번 해봐라'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 주위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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