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담긴 단편은 '라쇼몬', '오소리', '충의'를 제외하면 대부분 과거 1년 동안――내가 세는 나이로 스물다섯일 적에 쓴 것들이다. 그리고 절반은 우리가 경영하는 잡지 '신사조'에 한 번 게재한 것들이다.
이 시기의 나는 도쿄 제국 문과 대학의 나태한 학생이었다. 강의는 일주일에 대여섯 시간 밖에 듣지 않았다. 시험은 항상 지극히 애매한 답안으로 통과했다. 졸업 논문 따위는 바쁘기 짝이 없는 일주일의 틈바구니에서 작성했다. 그런 내가 이러한 여흥에 젖으면서도 졸업할 수 있었단 건 교수님들의 아량 덕이 적지 않다. 단지 편협한 스스로가 속내로는 그러한 아량에 감사하지 못 하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나는 '라쇼몬' 이전에도 몇 개의 단편을 썼다. 아마 미완성작도 더하면 이 책에 들어간 것의 두 배 이상은 되리라. 당시에 발표할 뜻도, 기관도 없었던 나는 작가와 독자와 평론가를 겸하면서 이렇다 할 불만도 느끼지 않았다. 물론 도중에 삼대째 '신사조'의 동인이 되어 단편을 하나 발표한 적은 있다. 하지만 곧 '신사조'가 폐간하는 동시에 나는 다시 문단과 무관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일이 이래저래 일 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번 '제국 문학'의 신년호에 원고를 가지고 가 반납된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가 같은 잡지에서 활자화되었고, 또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나 세 번째를 겨우 바깥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그 세 번째가 이 책에 담긴 '라쇼몬'이다. 그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건너건너 타케오 가토 군이 내 소설을 읽었다는 말을 들었다. 확실히 해두자면 읽었다는 말을 들은 거지 칭찬했단 말을 들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이게 내 소설도 친구 이외의 독자가 있다, 동시에 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지점이다.
다음으로 사대째 '신사조'가 쿠메, 마츠오카, 키쿠치, 나루세, 나 다섯 명의 손으로 발간되었다. 그리고 그 창간호에 기재된 '코'를 나츠미 선생님께서 편지로 칭찬해주셨다. 이게 내 소설을 친구 이외의 사람에게 받은 첫 비평이자 첫 칭찬이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스즈키 미에키치 씨의 추천을 받아 '참마죽'을 '신소설'에 발표했지만, '신사조' 이외의 잡지에 투고한 건 오히려 '희망'에 기재된 '이'가 첫 시작이었다.
내가 상기의 사실을 이 책의 뒤편에 기록한 건, 이러한 작품을 썼을 때의 자신을 스스로 기념하기 위한 일이다. 자신의 창작에 대한 소견, 태도 따위는 직접 달리 발표할 기회가 있으리라. 단지 나는 근래 들어 나 다운 길을, 나 답게 걷는 것으로만 조금이라도 성장했음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한동안 내가 받고 있는 신이지파니, 신기교파니 하는 명칭은 어느 것이든 민폐 덩어리 꼬리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명성으로 개괄될 정도로, 자신의 작품 특색이 선명하고 단순하다 자신할 용기가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나를 자극하고 고무해주는 '신사조' 동인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이 책 따위도 혹은 제군들의 이름 덕에――동인 중 한 사람의 작가로서 부족한 존재를 미래에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물론 나는 만족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만족하지 못 한다는 건 아니다. 구태여 동인에게 이야기를 남기는 이유이다.
다이쇼 6년 5월 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1917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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