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오후, 같은 대학을 나온 친한 친구 하나와 케이힌 전철 안에서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요전 번에 회사 용무로 Y에 갔을 때의 일이야. 그쪽에서 연회를 열어서 나를 초대해준 적이 있어. 뭐 Y니까 토코노마에는 돌로 된 노기 대장의 카케모노가 걸려 있고, 그 앞에 조화 작약속이 놓여 있었지. 저녁부터 비가 내려서 머릿수도 의외로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는 마음이 편하더라고. 더군다나 2층에서도 연회가 있었는데 이쪽도 다행히 그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소란을 떨지 않더라고. 그런데 말야, 술 따르는 사람 중에――
너도 알지? 우리가 옛날에 자주 마시러 간 U의 여종 중에 오토쿠란 여자가 있었잖아. 코가 낮고 이마가 또렷한, 그중에선 좀 어린애 같았던 애. 그 녀석이 그 안에 있더라고. 접대용 옷을 입고, 술병을 들고, 다른 종업원들처럼 흥을 돋우면서 말야. 나도 처음에는 사람을 착각했나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오토쿠가 맞더라고. 말을 할 때마다 턱을 들어 올리는 버릇도 그대로였어――덧없어지더라고. 왜, 시무라 대장이 좋아했었잖아.
그때 시무라 대장이 굉장히 진지하게 아오키당에 가서 작은 페퍼민트 병을 사와서 "달달하니 마셔보렴"하고 말했었잖아. 술도 달았겠지만 시무라도 달달했지.
그런 오토쿠가 지금은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니. 시카고에 있는 시무라가 들으면 기분이 어떠려나. 그런 생각에 말을 걸어보려다 참았어――오토쿠라면 전에는 닛폰바시에 있었습니다 같은 소리는 안 했을지 모르니까.
그랬더니 그쪽이 말을 거는 거야. "꽤나 오랜만에 보네요. 제가 U에 있을 적에 본 이후로 처음이니까요. 그쪽은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같은 소리를 하더라고――오토쿠 녀석, 그때부터 취해 있었던 거지.
하지만 아무리 취해 있어도 오랜만이기도 하고 시무라 일도 있으니 대화가 잘 풀리잖아. 그랬더니 다른 녀석이 신경이라도 써준다는 얼굴로 소란을 떨지 뭐야. 아예 주최자가 나서서는 주구장창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보내줄 거라니 성가셔지더라고. 그래서 나는 시무라의 페퍼민트 이야기를 해서 "이 녀석은 내 친구한테 물 먹인 녀석입니다"――바보 같지만 그렇게 말했어. 주최자가 나이가 있어서 말이지. 나는 처음부터 숙부를 따라온 거에 지나지 않았고.
그러자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물고 늘어지더라고. 다른 사람까지 똘똘 뭉쳐서 오토쿠한테 야유를 날린 거야.
그런데 오토쿠도 후쿠류마냥 가만있지 않았지――후쿠류면 맞겠지? 팔견전의 용 설명 중에 "우악자재優楽自在한 용을 후쿠류라 이름 지었다"하는 구절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후쿠류는 아주 우악부자재하니 참 우습지. 물론 이건 괜히 해보는 이야기지만――그냥 가만있는 거도 아니고 아주 논리적이잖아. "시무라 씨가 제게 반했다 한들 제가 반해야만 하는 이유가 어디 있나요?"하고 말야.
그뿐이겠어? "게다가 그렇게 따지면 저도 옛날에 훨씬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죠."
그게 소위 짝사랑의 슬픔이란 거라더군. 그러고는 예시를 들려던 거였겠지. 오토쿠 녀석, 묘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더군. 네가 들어줬으면 하는 게 그 이야기야. 어차피 그런 이야기니 재미가 있을 수가 없지.
참 이상하지 않아? 꿈 이야기하고 사랑 이야기만큼 지루한 것도 없잖아.
(거기서 나는 "그거야 당사자 말고는 재밌는 요소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지"하고 말했다. "그럼 소설을 쓸 때도 꿈하고 사랑은 어렵겠군.", "적어도 꿈은 감각적인 만큼 더 그렇지. 소설에 나오는 꿈 중에 진짜 꿈 같은 건 하나도 없을 정도잖아.", "하지만 연애 소설은 걸작도 잔뜩 있잖아.", "그만큼 후세에 남지 못 한 보잘 것 없는 작품도 잔뜩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든든한걸. 어차피 이것도 보잘 것 없기 짝이 없어. 오토쿠의 말투를 흉내 내면 "뭐 제 짝사랑 같은 것"이니까. 딱 그 정도로만 들어둬.
오토쿠가 짝사랑 한 남자는 배우라더군. 그 녀석이 아직 아사쿠라 타와라마치에서 부모님과 살 적에 공원에서 처음 봤다나 봐. 이렇게 말하면 너는 미야토자나 토키와자 1의 말단 배우를 떠올리겠지? 근데 그렇지가 않아. 애당초 일본인이라 생각한 것부터가 오류야. 외국인 배우라더군. 한도자키 2라나? 웃기더군.
그런 주제에 오토쿠는 남자의 이름도 알지 못 하고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 그뿐이겠어? 국적마저 모른다네. 아내는 있는지 독신인지――그런 거는 물론, 묻는 쪽이 멋을 모르는 꼴이지. 우습지 않아? 아무리 짝사랑이라지만 정도란 게 있어야지. 우리가 와카타케에 다닐 적에 정작 중요한 카타리모노 3는 몰라도 상대방이 일본인이고 예명이 쇼기쿠란 것 정도는 알았잖아――내가 그런 말로 놀리니 오토쿠 녀석, 성을 내면서 "그야 저도 알고 싶었죠. 그런데 알 수 없으니 도리가 없잖아요. 막 위에서만 만나는 게 전부였으니까."하고 말하더군.
막 위에서라. 묘하지. 막 안이라면 또 이해가 되지만 말야. 그래서 이래저래 물으니 그 연인이란 게 영화 속에 나오는 서양 배우라잖아. 이건 나도 놀랐다니까. 막 위란 것도 이해가 갔어.
다른 녀석들은 결말이 내키지 않았나 봐. 개중에는 "흥, 괜히 사람 비꼬기는."하고 떠드는 녀석도 있었지. 선착장이라 사람들이 드세거든. 하지만 척 보기에 오토쿠가 거짓말을 한 거 같지는 않았지. 물론 눈은 꽤나 취해 있었지만 말야.
"매일 가고 싶어도 용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한 주에 한 번 보는 게 고작이었어요."――이건 별거 아니었는데 뒷말이 대단했어. "한 번은 엄마한테 졸라서 겨우 보러 갔더니 사람이 가득 차서 구석에서 봐야 했어요. 그러자니 모처럼 그 사람 얼굴이 비쳐도 묘하게 평평하게 보이잖아요. 얼마나 슬프던지"――옷을 얼굴에 얹고 울었다는군. 그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막이 되어 납작이 보이면 슬플 만도 하지. 나도 동정심이 들더라고.
"몇 번이나 그 사람이 다른 역을 연기하는 걸 봤어요. 얼굴이 길고, 마르고, 수염이 난 사람이었죠. 대부분 검은, 당신이 입고 있는 듯한 옷을 입고 있었죠."――나는 모닝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 아까 일로 반성하여 기선제압이랍시고 "닮았나?'하고 말하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좀 더 멋진 남자에요."하고 말하더군. 말이 심하지 않아?
"그치만 당신은 막 위에서만 만난 거잖아요? 그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면 말을 나누거나 눈으로 마음을 알아갈 수는 있지만, 사진으로는 그럴 수도 없잖아요." 사진이기만 해? 영화잖아. 만지지 못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지. "마음은 주고 받는 거라잖아요. 주지 않는 사람은 받는 법도 없죠. 시무라 씨도 제게 자주 파란 술을 주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일도 불가능하죠. 당연한 인과 아닌가요?" 맞는 말이야. 이것만은 재밌는 와중에도 특히 마음이 움직이더군.
"게이샤가 된 이후로도 손님을 데리고 이따금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지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영화가 걸리지 않더라고요. 언제 보러 가도 "메이킨"이니 "지고마"니 보고 싶지 않은 것만 하고요. 끝내는 저도 이젠 인연이 아니구나 싶어서 포기했어요. 그런데요 당신……"
다른 사람은 상대가 안 되니까 오토쿠는 나 하나만 붙잡고 떠들기 시작했어. 이제는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런데요 당신, 이 땅에 와서 처음으로 활동하러 간 밤에 몇 년 만에 그 사람이 영화에 나오지 뭐예요. ――어딘가 서양의 마을이겠죠. 이렇게 돌이 깔려서는 중앙에 오동 같은 나무가 서있었어요. 양쪽에는 줄곧 서양식 건물이 펼쳐져 있고요. 단지 필름이 낡은 탓인지 저녁처럼 노랗고 집이나 나무가 다들 묘하게 떨고――지독한 경치였죠. 거기에 그 사람이 작은 개 한 마리를 끌고 담배를 태우면서 나왔어요. 역시 검은 옷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제가 어렸을 때와 다를 바 없이……"
대략 십 년 만에 연인과 만난 셈이지. 그쪽은 영화니 달라진 게 없지만 오토쿠는 후쿠류가 되어버렸어. 그렇게 생각하니 불쌍하더군.
"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 잠깐 멈춰 서서 저를 보며 모자를 벗고 웃어 보였어요. 그게 저한테 인사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이름만 알면 불러보고 싶었는데……"
불러봐? 미치광이인 줄 알을걸? 아무리 Y라도 영화에 반한 게이샤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영화에서 작은 여자 하나가 걸어와서 그 사람한테 매달리더군요. 변사가 말하기를 그 사람의 아내라네요. 나이를 먹은 주제에 커다란 새 깃털이 달린 모자 같은 걸 쓰고, 아주 요사스럽기 작이 없어요."
오토쿠는 질투한 거야. 그것도 영화인데.
(여기까지 이야기하니 전철이 시나가와에 도착했다. 나는 신바시에서 내려야 했다. 그걸 아는 친구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걸 우려한 것처럼 이따금 창밖을 보며 살짝 급해진 말투로 말을 이었다.)
영화는 흘러서 결국 그 남자가 경찰에게 붙잡히는 걸로 끝났다네. 무슨 짓을 했는지도 자세히 이야기해줬는데 아쉽게도 기억은 나지 않아.
"단체로 몰려서 그 사람을 붙잡았아요. 아니, 그때는 이미 방금 전에 말한 길이 아니었죠. 서양의 주점 같았어요. 술병이 쭉 줄지고 끝자락에는 커다란 앵무새 하나가 놓여 있고요. 밤이었는지 한사코 새파랗게 보였어요. 그렇게 새파란 가운데――저는 그 사람이 울 거 같은 표정을 짓는 걸 봤어요. 당신도 보면 분명 슬퍼질 거에요.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입을 반쯤 열고……"
그러더니 호적이 울리며 영화가 끝났어. 남은 건 하얀 막 뿐이었지. 오토쿠 녀석의 불만이 마음에 들더군――"다들 사라져 버린 거예요. 사라져 덧없어졌죠. 어차피 모든 게 그렇지만요."
이것만 들으면 대단한 깨달음 같지만 오토쿠는 울다 웃기를 반복하며 비꼬는 투로 말한 거야. 히스테리한 녀석이었지.
하지만 히스테리라도 괜히 진지한 구석이 있었지. 어쩌면 영화에 반했다는 것은 지어낸 이야기고, 사실은 우리 중 누군가를 짝사랑하던 걸지도 몰라.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전철이 신바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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