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쓸 때와 말할 때의 성질이 꽤나 달라진다.
쓰는 말, 요컨대 '문장'은 여러 연구나 모범이 존재하나 '하는 말' 요컨대 '담화'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 않다.
문장의 좋고 나쁨은 깔끔하고 올바른 판단 기준을 통해 논해지게 되었으나 '담화'나 '입말'의 표준은 영 애매하여 기댈 구석이 없는 듯하다.
"말을 잘 한다", "말재간 있다"하는 사람의 말을 실제로 들어보면 대다수는 형식에 틀어박힌 말의 나열이며 매력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봐도 좋다.
문장과 마찬가지로 '하는 말' 또한 단순히 한정된 사상이나 감정만 전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요컨대 말하는 사람의 연령, 성별, 교양, 환경, 국적, 시대, 더욱이 그 직업, 성격, 기분까지 표현하는 물건으로 그런 의미에선 '말의 예술'이란 게 만들어진다. 요컨대 문장이 문학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하는 말'은 화술 또 웅변술, 특히 연극의 대사로 이어지게 된다.
또 그런 전문적인 이야기와 별개로 일상에서 우리가 쓰는 말 또한 역시나 문화생활에 임하는 자로서 필요한 '말의 훈련'이 존재하며 이 훈련이 개개인의 말투, 분위기, 말의 매력을 낳게 된다.
따라서 어떤 인물이 쓰는 말은 아무리 부주의하게 쓰이는 것이라도 그 사람이 어느 틈엔가 몸에 익힌 말이며 육체에 동반하는 표정과 다를 바 없단 뜻이다.
우리는 먼저 가정에서 처음으로 말을 배우고 다음으로 나이에 따라 환경과 경험이 다른 친구로부터 저도 모르게 말을 얻어 오고 또 학교에서 교과서 등을 통해 소위 표준어란 걸 습득하게 된다. 이렇게 성인에 이틀쯤에는 거의 '그 사람의 말'이란 게 완성되나 그 후에라도 사회에 나와 다양한 영향을 받아 말의 내용, 색채가 복잡해지고 또 그만큼 독특한 '맛'을 지니게 된다. '말을 섞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건 요컨대 그런 뜻이다.
자 그렇다면 어떤 말을 쓰는 게 좋은가. 그건 오늘날 어떤 인물이 이상적인 인물이냐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답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나는 '올바른 말'과 '아름다운 말'을 구별하려 한다.
올바른 말이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 문법을 배우고 그걸 따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올바른 말이 꼭 아름다운 말이라고 할 수 없는 점에 비밀이 하나 있다. 그와 동시에 아름다운 문장이 그대로 아름다운 말투가 되지 않는단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현대 일본의 '구어체'란 문장은 역시나 '쓰기 위한' 말이란 건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진짜 '하는 말'은 좀 더 일상생활에 맞춰져 있으며 시시각각의 감정에 뒷받침된, 갑작스러우나 자연스럽고 정리되지 않았으나 호흡이 담겨 있는 말이다. 그리고 그건 눈으로 보는 말이 아닌 귀로 듣는 말임을 원칙으로 둔다. 때문에 하는 말의 아름다움이란 목소리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말은 표정과 같다고 앞서도 말했는데 표정 또한 넓은 의미에선 하나의 말이다. 그러니 말의 아름다움은 말 자체의 선택과 배치, 그걸 말하는 표정, 또 말하는 목소리의 질에 따라 다양한 음영이 되어 표현된다. 더욱이 말의 선택과 배치도 표정도 목소리의 질도 하나같이 그때와 경우에 따라 생각처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 약간의 준비나 궁리는 가능할지언정 대개는 표면만의 장식으로 끝나 그 본질은 말 밑바닥에 감출 수 없는 모습으로서 드러난다. 인물이 가진 매력, 그 개성의 눈부심이 말의 매력이 되리란 건 이를 통해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좋은 취미, 풍부한 정서, 예민한 감각, 굳은 신념, 그런 인간적 품격은 물론 말에 품위와 박력을 주나 또 한편으로 아이의 짧은 말이나 속어, 방언 속에서 사랑스러우며 미묘한 표현을 발견해 이거 좋다 싶은 적이 있다. 진실한 울림이란 즉 이러한 걸 말하며 말의 생명은 결코 겉치레에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말투도 그렇고 말하는 법도 그렇고 요컨대 그 매력의 본체란 인간이 가진 사고방식, 감정을 느끼는 방식에 존재하며 어떠한 연습도 궁리도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발휘되는 것이라면 말의 매력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단 말 또한 하나의 문화적 발달을 이루는 성질을 지녔으니 이상의 정신에 밑받침을 두어 이를 올바르고 아름답게 지켜 길러 가는 게 개인으로서 사회로서 특히 국민으로서 필요한 일임에 분명하다. 일상 담화를 평범함과 속됨에서 구하는 건 자신의 '생활'을 지니는 것에서 시작되어 독서를 통해 되도록 풍부한 어휘를 갖추고 그 위에 우수한 문학을 쌓아 소위 '어감'을 충분히 흡수하는 게 중요하다. 표준어 대화가 왕왕 무미건조해지며 정중한 말투가 때때로 뻔뻔하고 우습게 보이는 건 대개 어감 부족에서 오곤 한다.
말의 세련됨이란 결국 인간 수양 위에 쌓여야 비로소 의미를 갖추며 지식인이 갖춰야 할 말의 매력이란 그 사람의 풍부한 교양에서 시작되는 긍지의 표현이며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알고 예절과 신념으로 진실을 솔직히 말하는 데 있다.
이 글은 쇼와 9년 후진코론에 발표한 걸 중등 여자 국어 독본에 수록하기 위해 개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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