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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서양 영화는 왜 재미 있는가?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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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역사가 젊은 것처럼 영화 관객은 대개 굉장히 젊다. 보통 예술적이고 정신적인 오락을 추구하는 나이는 아직 생활을 위한 시간을 많이 쓰지 않는 청년기인 경우가 분명하며 문학적 독서 등도 마흔을 넘으면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평범한 듯하나 그럼에도 문학이나 연극 방면에선 어른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무엇보다 내용이 어른의 머리로 생각되지 않아서 세간을 어느 정도 아는 시선으로 보면 바보 같은 거짓말이 너무 많으며 형식상으로도 자유로운만큼 세련되지 않은 점이 있다. 특히 영화관의 분위기란 게 묘하게 어린애 같은 냄새가 감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장식도 설비도 어른의 신경에 녹아내리지 않는 면이 있다. 요컨대 부끄러운 것이다.

 영화는 시대의 첨단을 가니 시대에 뒤처진 늙은이에겐 맞지 않는단 논리는 성립하는 듯 성립되지 않는 확실히 영화는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예술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대 일본의 영화 기업은 그런 의미의 감각에 되려 굉장히 늦어져 있다. 따라서 청년적이라기 보다도 유아함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젊음이 가진 매력보다 젊은이 밖에 끌어 당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충분히 시대에 민감한 사람마저 다가오지 못하게 만든다.

 이 점은 서양 영화를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단지 서양 작품에는 상당한 예외가 존재하며 오락이란 면에서는 충분히 사람을 만족시킬만한 본격적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도 근래에는 그만한 물건을 주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굉장히 기쁜 일이다. 하지만 투자자 쪽이 제대로 마음 먹지 않은 게 명백히 보이며 그 현저한 증거는 돈을 들여야 할 부분에 돈을 들이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점에 있다.

 

 그럼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이는 무엇보다 서양 영화는 왜 재밌는지를 조금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투자자는 분명 대답해낼 수 있으리라. 그건 시장 문제로 일본의 몇 배란 돈을 제작비에 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또 비평가는 말하리라. 감독의 두뇌와 기술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일반 관객은 의외로 정직하며 또 감이 좋다. 즉 그들 중 대부분은 서양 영화가 가진 배우의 매력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리라.

 아니, 그럼 투자자와 비형가도 알아야 할 일 아닌가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마 그걸 알고서도 도리가 없다 생각하는 듯하다. 고작해야 감독 정도가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럼 일본 배우는 서양 배우에 비해 얼마나 부족한가. 어디가 부족한가. 왜 부족한지를 대답해 보자.

 그전에 먼저 일본인은 서양인에 비해 배우적 소질이 부족한 일은 결코 없다고 본다. 단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서양에서 배우가 될 법한 종류의 인물이 일본에선 거의 배우가 되려 하지 않았단 점에 있다. 좀 더 들어가자면 일본에서 스크린 위에 나타나주길 바라는 인물은 좀처럼 적으면서 그 적은 와중에도 한 사람도 배우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 배우가 될 뜻도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은 결코 현재의 영화 배우고 모두 소질이 없단 뜻이 아니다. 꽤나 우수한 소질을 가진 배우도 있지만 영화 배우에 뜻을 두고 그 길에 들어선 순간 인간미가 점점 사라지고 연기의 숙련이 그 선에 따라 쌓이지 않았다는 놀라운 착오의 결과이다.

 인간미, 요컨대 갖은 방면에서 책임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갖추게 되는 품격이란 무엇보다 그 사람이 짊어진 생활을 반영한다. 배우 또한 배우로서의 생활이 사회적으로 별볼일 없는 한, 그 품격 또한 왜소하고 얄팍하여 소위 연예인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를테면 두뇌노동자에겐 두뇌노동자의 품격이 있다. 수입이 얼마이든 또 지위가 높든 낮든 다른 계급은 도무지 흉내낼 수 없는 어떠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오늘의 배우 중에 이런 계급의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내 의견으로는 한 명도 없다. 하지만 배우 중 대부분은 그 직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한면에서 훌륭한 두뇌노동에 종사해야만 할 터이다. 서양에서는 정치인이나 회사 중역, 대학 교수를 연기해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배우가 많은 반면 일본에선 관청이나 회사 과장. 심지어는 중학교 영어 교사마저 하나의 타입으로 볼 때에 이에 적합한 배우를 좀처럼 찾아낼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엄밀한 배역 표준에 따른 것이나 이를 적당히 하는 부분에서 일본 영화의 근본적 유치함과 얼렁뚱땅한면이 만들어지며 이를 엄밀히 하지 않기에 서양 영화가 가진 기술 이상의 재미, 즉 진실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193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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