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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말하는 기술' 서장을 대신하여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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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가 또렷함에도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되지 않고 따라서 그걸 가리킬 공통의 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는 수도 없이 셀 수 있다.

 서유럽 문명의 도입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또렷이 일깨워주었다.

 예술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이따금 신조어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대다수는 서유럽 말의 번역이며 때문에 항상 남의 사상을 빌려왔다는 게 드러난다.

 내가 과거에 프랑스로 가 현지에서 프랑스 연극이란 걸 배웠을 때 가장 곤란했던 건 전문어의 뜻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를 정확히 포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더욱이 감개무량했던 건 이렇게 겨우 파악한 실체가 딱히 말만큼 특이한 게 아니라서, 단지 그게 하나의 엄격함을 가진 현실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만을 주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ART DE DIRE(말하는 기술)이란 말을 마주했을 때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연극 분야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쓰는 말이 아니라 무대 위 대사가 근대극의 세례를 통해 DÉCLAMER(낭독하다)에서 DIRE(말하다)로 변해가는 시대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쓰인 말이 분명하다. 자크 코포도 이 말을 자주 쓰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대사를 낭독한다'라 칭해지는 과거의 습관을 타파하는 의미에서 '대사를 말한다'하고 단적으로 선언하는 연극 혁신의 깃발이 그곳에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 음악 연극 학교(콩세르바투아) 의 교수 블레몬의 저서 "ART DE DIRE"를 읽으면서 이 생각이 조금 성급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눈이 번뜩 뜨인 부분은

 ――대사를 정확히 말하는 것만이 학생에게 가르칠 수 있는 교사의 유일한 과업이다. 중요한 건 '거의 정확한' 대사의 말하는 법이 가장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단 점이다

 하는 신념으로 가득 찬 단정이었다.

 나는 일본으로 돌아와 되도록 정통적인 길을 밟은 배우 양성의 필요성을 통렬하게 느껴 미력하게나마 동지와 함께 이 일을 시작하려 했다.

 다나카 치카오 군은 오늘날에 생각하면 기이한 인연으로, 20년 전 우리 연구소의 제1기생으로 게이오 불문과에 재적을 둔 채로 열심히 '새로운 연극의 문'을 두드렸었다.

 내 강의 '말하는 기술'은 블레몬의 "ART DE DIRE"가 바탕이니 프랑스어를 읽을 줄 아는 다나카 군에게 원서를 권했고 다나카 군 또한 동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해 제1차 '극작'에서도 소개한 기억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 후 다나카 군은 작가로서 크게 성장하였다. 심지어 연기에 관한 연구와 배우 지도에 열의를 들였다. 특히 그동안 블레몬을 자기 경험 위에 소화하여 블레몬을 비판하면서 자가낙롱 중에 '말하는 기술'의 체계를 갖춘 걸 알고 그 초고 공표를 바라 마지않았다. 제2차 '극작'이 그 기회를 준 것이다.

 세카이분가쿠샤는 이 귀중한 문헌을 우리 연극계에 선물하는 것으로 하나의 '정통적이며 혁신적인' 기여를 했음이 분명하다.

1949년 초여름

다나카 부부를 맞이한 아사마 산기슭 사과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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