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 현대극――그렇게 이름 붙여야 할 각각의 작품 및 그 작가의 경향, 작풍 등의 연구가 이뤄져 있어야 한다. 나는 이제까지 그 연구를 소홀히 해왔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을 통해 질문에 답하는 게 용납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하리라.
일본 현대극은 입센 이후로 오늘에 이를 때까지 유럽과 미국의 대표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그 이름을 하나하나 꼽을 필요조차 없다. 물론 작가들 개개인에 따라 취향은 갈리겠지만 결국 그 '취향'을 쫓는 법 없이 유행을 쫓아 우루루 몰려 온 경향이 존재한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은 입센의 세례를 받았으리라. 또 일부는 마테를링크나 체호프의 취향서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오늘 날에는 그마저도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근래엔 표현파가 다소의 모방자 내지 공명자를 낳고 있다. 현대 작가의 대다수는 영어나 독일어를 읽을 줄 안다. 전자는 아일랜드극을 주시하리라. 후자라면 하웁트만이나 슈니츨러에 경도되리라.
번역을 통해 읽은 사람은 스트린드베리나 로키에게 많은 암시를 받으리라. 반면 프랑스 극작가에게선 배울 게 없었으리라. 브류가 일찍부터 소개되었다 한들.
일본 현대극은 아직 요람 안에 자리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앞으로는 외국극의 영향을 더 크게 받으리라 본다. 너무나 많은 외국 작가를 끝없이 소개 받은 탓에, 현대 일본 극단은 서양극의 형식적 개념만을 간신히 포착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현대극의 주류는 아직 사실서 벗어나지 못했다. 요컨대 서양극이 비교적 충실한 소개자를 얻어 문학적으로 일본 극단을 자극하고 계발하던 시대부터 서양극에게서 배울 게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오늘 날까지, 일본 극단은 결국 어떠한 현저한 비약도 추이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서양도 이만큼 짧은 기간에는 어떤 핵심적 행동도 갖추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렇더라도 달려 가길 좋아하는 일본 극단이 한 번은 새로 나타난 것에 매달리더라도 끝내는 다시 첫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곳을 자신의 밭으로 삼는 걸 보면, 일본 현대 작가의 머리에 가장 깊게 새겨진 건 실사 시대의 입센, 번역의 체호프, 가장 알기 쉬운 하웁트만, 느슨한 마테를링크 쯤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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