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나는 어떤 일에나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다. 특히 수집이란 건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곤충 표본을 모은 거 말고는 아직도 열중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성냥 상표는 물론이요, 오일캔이든 간판이든 내지는 유명 작가의 그림이든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에게는 경의에 가까운 걸 느끼곤 한다. 때로는 약간의 혐오가 뒤섞인 감탄 가까운 걸 느끼고 있다.
서적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나도 벌어먹는 게 있으니 조금의 서적을 지니고 있다. 허나 그마저도 모은 건 아니다. 되려 저절로 모였다 해야 한다. 만약 모은 서적이라면 무언가 전체를 통트는 맥락 따위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책장 안 서적은 모은 서적이 아니라는 증거라도 되듯이 굉장히 제각각이며 또 뒤섞여 있다. 맥락 따위는 약으로 쓰고 싶어도 없다.
그럼 전부 엉망진창인가 하면 또 마냥 그렇지는 않다. 적어도 내 책장 속 서재는 내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혹은 시간에 따른 취향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그 점에서는――나라는 걸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나의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이전에 책장 속 책을 구입한 시기 별로 분류하여 소유주의 일생 변화를 암시하는 짧은 글을 써보려 했다. 하지만 서양인이 쓴 글에서 지독히 비슷한 이야기를 보았기에,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거기서 멈춘 건 물론 천하에게 잘 된 일이다. 하지만 책장 속 서재가 거울처럼 주인을 비추는 건 어찌 되었든 무언가가 그립거나 혹은 모종의 꺼림칙한 사실임이 분명하다.(때문에 저렴하게 팔아넘기는 건 타인의 작품을 덧쓰는 것만큼 부도덕적인 행위이다.)
수집가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나 슬픔을 나는 느낄 수 없다. 무엇보다 서점을 둘러보거나 카탈로그를 읽는 동안 눈에 들어온 걸 사곤 하니 감격도 희박할 수밖에 없다. 물론 큰돈도 써본 적이 없다.
이마저도 책벌레의 이야기가 되는 걸까. 나는 아직도 그런 게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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