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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타네코의 우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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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선배인 한 사업가의 딸이 결혼식을 가진다. 그런 소식을 들은 타네코는 마침 출근 준비 중이던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제가 꼭 나가야 할까요?"
 "아무렴 나가야지."
 남펴는 넥타이를 매면서 거울 속 타네코에게 대답했다. 물론 서랍장 위에 세워진 거울인 이상, 타네코보다는 그 눈썹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에 가까우리라.
 "그치만 제국 호텔에서 하는 거잖아요?"
 "제국 호텔――이야?"
 "어머, 모르셨어요?"
 "응……야, 조끼 떨어진다!"
 타네코는 서둘러 조끼를 들어 올리고는 다시 한 번 결혼식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국 호텔은 양식일 거 아니에요?"
 "당연한 소리를 하네."
 "그러니까 곤란하죠."
 "왜?"
 "왜냐니……저는 양식 먹는 법을 한 번도 안 배웠는걸요."
 "그런 걸 누가 배워서 해!"
 남편은 웃옷을 걸치자마자 적당히 봄용 중절모를 뒤집어 쓴다. 그리고 마침 서랍장 위에 놓여 있던 청접장을 훑어 보며 "뭐야 4월 16일이잖아."하고 말했다.
 "16일이든 17일이든 뭐가 대수라고……"
 "대수지. 아직 삼일이나 남았단 소리잖아. 그 동안 연습해두면 되잖아."
 "그럼 당신이 내일이라도 어디에 데려 가 주세요!"
 하지만 남편은 아무 대답도 않고 출근해버렸다. 타네코는 남편을 바라보며 살짝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몸 상태도 그런 감정을 거들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이도 없이 혼자 남겨진 타네코는 난로 앞에 놓인 신문을 들어 올려 그런 기사가 없나 구석구석까지 살폈다. 하지만 "오늘의 식단" 따위는 있어도 양식 먹는 법 같은 건 실려 있지 않았다. 애당초 양식의 먹는 방법이란 게 뭘까?――타네코는 여학교 교과서에 그런 게 적혀 있었던 걸 떠올려 바로 서랍장 구석에서 낡은 가정 교과서 더 권을 꺼냈다. 두 책은 어느 틈엔가 손때마저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맞서기 힘든 과거의 냄새를 내뿜었다. 타네코는 얇은 무릎 위에 그러한 책을 펼친 채 어떤 소설을 읽을 때보다도 열심히 목차를 살폈다. 
 "재봉, 세탁. 손수건, 앞치마, 장갑, 테이블보, 냅킨, 레이스……
 돗자리, 타타미, 융단, 리놀륨, 카펫……
 부엌 용품, 자기 종류, 유리, 금속제……"
 한 권의 책에 실망한 타네코는 다른 책을 꺼냈다.
 "붕대법, 출산, 아이의 옷, 산실, 산구……
 수입 및 지출, 저금, 이자, 기업 소득……
 집안 관리, 가풍, 주부의 마음가짐, 공부와 절약, 교제, 취미……"
 타네코는 책을 집어 던지고 커다란 전나무 거울 앞에 머리를 묶으러 갔다. 하지만 양식의 먹는 방법만은 도무지 마음에 걸렸다……
 다음 오후, 남편은 타네코의 걱정을 보다 못 해 일부러 긴자 뒤편에 자리한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타네코는 테이블에 앉아 먼저 자신들 이외에 아무도 없단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가게가 한산한 걸 보니 남편의 보너스에도 영향을 준 불경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유감인걸. 이렇게나 손님이 없다니."
 "무슨 소리야. 내가 손님이 없는 시간을 골라 온 건데."
 그렇게 남편은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양식을 먹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실은 그 또한 확실하단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스파라거스에 나이프를 넣으며, 타네코를 가르치는데 모든 지혜를 기울였다. 물론 타네코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오렌지니 바나나니 하는 게 나올 때에는 자연스레 과일의 가격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레스토랑을 뒤로하여 긴자의 뒷골목을 걸었다. 남편은 겨우 의무를 다 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타네코는 줄곧 포크의 사용법이니 커피 마시는 법이니 하는 걸 떠올렸다. 그뿐 아니라 만에 하나 틀렸을 때는――그런 병적인 불안도 느꼈다. 긴자의 뒤편은 조용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햇살도 봄녘의 정숙함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타네코는 남편의 말에 적당히 대답하며 느린 걸음을 옮겼다.
 타네코는 물론 난생 처음 제국 호텔을 찾는 것이었다. 타네코는 일본식 예복을 입은 남편을 앞에 두고 좁은 계단을 오르며 응회석이나 벽돌로 만든 내부에 모종의 꺼림칙함과 비슷한 걸 느꼈다. 그뿐 아니라 벽을 타고 전해지는 커다란 한 마리 쥐마저 느꼈다. 느꼈다?――그건 실제로 '느꼈다'였다. 타네코는 남편의 소매를 잡아끌며 "어머 여보, 저기에 쥐가."하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돌아보고는 살짝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어디에?……잘못 본 거겠지."하고 대답했다. 타네코는 남편의 말을 듣기 전부터 스스로의 착각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기만 할 따름으로 타네코의 신경에는 줄곧 거슬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테이블 구석에 앉아 나이프나 포크를 움직였다. 타네코는 이따금 결혼 예복을 입은 신부도 보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마음에 걸리는 건 물론 접시 위 요리였다. 그녀는 빵을 입에 넣을 때마저 온몸의 신경이 떨리는 걸 느꼈다. 하물며 나이프를 떨어트렸을 때에는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식은 조금씩 마지막에 다가갔다. 타네코는 접시 위 샐러드를 보았을 때, "샐러드가 딸린 요리가 나올 때에는 식사도 끝났다 보면 돼"하는 남편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겨우 숨을 돌리니 이번에는 샴페인잔을 들고 일어서야 했다. 결혼식 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몇 분이었다. 타네코는 머뭇머뭇 의자에서 벗어나 엉거주춤 잔을 들어 올린 채, 어느 틈엔가 등뼈마저 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은 전철 종점에서 좁은 옆골목으로 빠졌다. 남편은 꽤나 취한 듯했다. 타네코는 남편의 발을 조심하며 신이 난 듯한 분위기로 무어라 떠들었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전등이 밝은 '식당' 앞을 지났다. 그곳에는 셔츠 한 장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식당' 여종과 장난치며 문어를 안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물론 타네코의 눈에는 힐끔 보인 게 전부였다. 하지만 타네코는 이 남자를――볼품없이 수염을 기른 남자를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자연스레 그의 자유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식당'을 지나면 주택가가 이어졌다. 따라서 주위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타네코는 이런 밤중에 나무의 싹 냄새를 느껴, 어느샌가 나고 자란 시골을 떠올리게 되었다. 50엔 채권을 "이걸로도 부동산(!)이 늘어나는 거란다."하고 의기양양했던 어머니도.
 다음 날 아침, 묘하게 맥이 빠진 타네코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역시나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여보, 오늘 아침 신문 읽었어요?"
 "그래."
 "어느 동네 도시락집의 딸이 미치광이가 되었다잖아요?"
 "미쳐? 왜?"
 남편은 조끼에 팔을 넣으며 거울 속 타네코를 보았다. 타네코보다는 타네코의 눈썹을――
 "직공인지 뭔지가 키스했다네요."
 "그 정도로 발광할 일인가?"
 "할 일이죠. 그랬더니 떠올랐지 뭐예요. 나도 어제 무서운 꿈을 꿔가지고……"
 "무슨 꿈인데? ――이 넥타이는 올해까지만 쓰고 버려야지."
 "뭔가 엄청난 실수를 해가지고――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큰 실수를 해서 기차 선로에 뛰어드는 꿈이었어요. 거기서 기차가 오니까――"
 "치인다 싶었더니 깼구나?"
 남편은 웃옷을 걸치고 봄의 중절모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여전히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확인하고 있다.
 "아뇨, 깔린 후로도 꿈속에선 살아 있었어요. 단지 몸은 엉망진창인데 눈썹만 남은 거 있죠……역시 요 며칠 동안 양식 먹는 법만 신경 써서 그런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타네코는 남편을 보내며 반쯤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어제 큰 실수라도 했으면 나도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죠."
 하지만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출근해버렸다. 타네코는 겨우 혼자 남아 난로 앞에 앉아 주전자에 올려 놓은 미적지근한 녹차를 마시려 했다. 하지만 타네코의 마음은 도무지 안정되지 않았다. 타네코의 앞에 놓여 있던 신문에는 꽃으로 가득 한 우에노 사진이 실려 있었다. 타네코는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차를 마시려 했다. 그러자 녹차는 어느 틈엔가 운모와 닮은 기름을 띄우고 있었다. 심지어 그건 무슨 연유인지 자신의 눈썹과 쏙 닮아 있었다.
 "…………"
 타네코는 턱을 괸 채 머리를 묶을 기운조차 내지 못 하고 가만히 녹차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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