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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공습 드라마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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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방송국 문예과 과장 쿠보타 만타로 씨께서 라디오 방송용 '공습 드라마'를 적어달라 권하였다. 조금 당황하였으나 이래저래 생각한 끝에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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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물론 이번 방공 연습을 앞두고 반은 선전, 반은 여흥으로 여겨지는 시도이리라. 하지만 나는 가장 먼저 각종 음향효과를 써볼 좋은 기회지 싶어 그 방면서 많은 관심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쿄 하늘에 적의 비행기가 찾아오는 상상은 늘 해왔다 쳐도 막상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 시민은 얼마나 '확실히' 대응할 수 있을까. 이는 정말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비규환과 같은 '음향효과'는 공습의 참상을 묘사하는데 꼭 필요할까. 일본 국민의 명성을 위해 손을 더하는 게 맞는 걸까? 나는 망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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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적의 비행기를 요격하는 우리 방공부대의 활약은 어떨까. 적과 아군의 공군이 난잡하게 싸우는 전투는 음향적으로 색채 있는 환상(이미지)를 만드는 게 상당히 곤란하리라. 하다못해 지상부대 요컨대 고사포나 고사 기관총의 실탄 사격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방송국을 통해 경비 사령부 이시모토 참모의 알선으로 치바 해안가의 이이오카에서 포격 학교의 고사파 연습을 볼 수 있었다. 보통 대포 소리라 하면 '펑'이라고 누구나 생각할 테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옆에서 듣고 있으면 달리 대체할 수 없는 소리이다. 중량과 압력과 속도가 섞인 일종의 생생한 금속음이다. 심지어 이 발사에 동반하는 폭음이 탄환이 공기를 가르는 장엄한 마찰음과 이어지고 더욱이 한 무리의 하얀 연기를 남기며 목표 근처서 파열하는 명랑쾌활한 폭음으로 끝나는 삼 단의 경과는 포전 묘사에 빠질 수 없는 내용이란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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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내가 당일 알고 싶었던 건 조공대와 포대의 연락에 사용되는 명령, 보고, 호령 용어였다. "목표 동쪽 상공의 폭음, 항속 사십, 운전 개시, 조사 준비. 제1분대 청음 좋음. 통일조사, 십 초 조사 개시. 준비측 052・42. 목표 추종. 청음기는 동쪽 상공을 경계하라. 목표 동쪽 상공의 사광내 중폭, 고도 1200, 개시, 항속 10 초, 항로각 500, 5발……" 그런 문구가 내 노트에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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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리의 해변을 남쪽에 품은 절벽 끝자락에 서서, 나의 공상은 태평양의 찬바람을 받으며 전쟁과 라디오 드라마 사이를 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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