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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시다 쿠니오

번역 - 키시다 쿠니오

by noh0058 202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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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이란 일에 여러 이론을 붙이는 자도 있으나 대부분의 번역은 번역가 본인을 위해 하는 일이다. 번역을 읽고 원작을 논하는 건 아주 위험하다는 말도 있고 또 번역은 하나의 문화 사업이란 구실도 있으나 번역 그 자체는 돈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해보면 좋을 일이다.
 번역한다는 건 원서를 적어도 열 번은 반복해 읽는 일이다.
 번역을 하다 보면 자신이 가진 어학력의 밑바닥을 알 수 있다.
 번역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일본어를 못 했나 하고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약이 된다.
 한 번 읽어 재밌던 책이 번역하면서 읽거나 혹은 다 해버리고 난 뒤에는 재미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재미없는 작품이란 증거이다.
 완성된 번역을 통해 원문의 그림자가 전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번역된 문장이 뛰어난가 부족한가 뿐이다.
 여러 작가를 번역할 때 번역자의 독자적인 문체가 되려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쉬우나 그런 일은 결코 없으리라.
 이상적인 번역이란 의미를 정확히 포착하는 이상으로 번역문을 통해 원문의 맛을 드러내는가에 있다. 그런 풍조가 있는 모양이나 그마저도 단지 그런 느낌이 들 뿐으로 일본어로 프랑스 문장의 맛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하다.
 몽테뉴의 문체란 프랑스어 문장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몽테뉴를 열렬히 사랑하고 깊게 이해하여 그 정신과 풍모를 가장 가깝게 느낀 번역가 세키네 히데오 씨의 훌륭한 "문체"가 다소의 분장은 하였을지언정 실제로는 원작자의 정신과 풍채를 "일본풍으로" 방불케 그려내는 힘을 지녔을 뿐이다.
 문장의 리듬과 그 정확한 이미지란 결코 번역에는 적합하지 않다. 단지 갑의 아름다움을 을의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기술이 번역의 순문학적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이는 번역이 가진 번안적 부분이라 해도 좋으리라.
 이런 부분이 없는 번역은 문학적 작업이라 할 수 없는 기계적 번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번역도 없는 것보다야 나으나 번역자도 독자도 지루해지리라. 위험한 코스를 굳이 택하는 등산가의 심리와 비슷하다. 부모가 걱정할만하다.
 뮈세와 아나톨 프랑스를 일본어로 읽는 것처럼 번역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모파상은 아무것도 아닌 듯하나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일본어로 쓰면 맛을 줄 도리가 없다. 작품에 따라 다르긴 하나 자칫하면 저렴해 보여 읽을 게 못될 듯하다. 그런 걸 써서 그만한 문학이 되는 건 프랑스어가 가진 힘이지 않을까 싶다. 혹은 그 이상으로 프랑스 문화가 가진 힘이거나.
 르나르는 비교적 누구나 번역해도 괜찮은 작가이지 싶다. 문장에 굳센 마음 같은 게 있어 이가 공기 같은 걸 발산하나 그 마음을 움켜쥐면 그것만으로도 독특하고 재미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의 문제는 모파상과 반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없다. 무리하면 뚝하고 끊기고 말아 금세 이래서는 안 되지 싶어진다. 반면에 모파상은 잡아당기면 한사코 늘어나서 자칫하면 원래의 느낌서 멀어지고 만다. 진지하게 임하면 초조해진다. 
 희곡 번역은 실제로 프랑스서 연극을 보지 않는 한 정작 중요한 대화의 호흡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발성 영화는 그런 면에서 좋은 공부가 되나 결국 일본어는 "입으로 하는 말"로선 빈약하기 짝이 없다. 대화의 표정마저 말로 번역하는 건 불가능하니 체념할 수밖에 없다.(193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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