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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염천현담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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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습니다. 올해는 특히 더워요. 정말로 덥군요. 이렇게 더운데 일부러 이런 시골까지 와주셔서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만 문제는 할 이야기가 없군요. 웃옷 벗으세요. 네. 이렇게 더운데 밖을 걸으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양산을 쓰고 걸으면 조금 괜찮을지 몰라도 남자가 양산을 쓰며 걷는 모습은 잘 보지를 못 하는군요.
 정말로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림 이야기요? 그것도 곤란하지요. 이전엔 저도 그림을 아주 좋아하고 화가 친구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 화가들의 작품을 폄하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적도 있었는데, 작년 가을에 홀로 몰래 그림을 그려보다 그 실력에 스스로 질색을 해버린 이후론 그림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기로 정했습니다. 요즘에는 친구의 작품에도 마냥 감복하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
 이건 그림 이야기는 아닌데 얼마 전에 신바시엔부죠에 분라쿠를 보러 갔습니다. 분라쿠는 학창 시절에 한 번 본 이후로 거의 십 년만이었으니까 그 유명한 에이조, 분고로가 십 년을 지나 더욱 놀랄만한 숙련된 기예를 보여줄 거라 크게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막상 보니 조금도 달라져 있지 않더군요. 십 년 전과 똑같았어요. 제 기대는 빗나간 셈이지만 그래도 저는 생각을 고쳤습니다. 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야말로 정말로 감탄하고 경복해야 할 일 아닌가 하고서요. 진보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나쁘게 들리지요. 하지만 퇴보하지 않았다고 고쳐 말하면 어떨까요. 퇴보하지 않는다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행이란 천재에 이르는 방법이 아니라 젊을 적의 천품을 한 사코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요. 퇴보하지 않는다는 건 보통 노력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높이를 한사코 변함없이 유지하는 예술가는 어지간한 녀석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와 함께 퇴보하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예술이 훌륭해진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남들 이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어떤 천재라도 추락하고 맙니다. 한 번 추락하면 올라오지 못 해요.
 변하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하물며 예술상의 진보니 대비약이니 하는 건 거의 제작자 본인은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로, 그야말로 하늘의 뜻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종이 한 장의 작은 진보마저 그렇습니다. 스스로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나아가고 있어도 옆에서는 현상 유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제작은 경험해보지 않은 구경꾼들이 저 작가는 비약이 없다, 십 년이 하루 같다 하며 건방진 소리를 하는데 그 십 년 같은 하루가 얼마나 많은 수행에 바탕을 주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겁니다. 권위 있는 비평을 하려면 먼저 스스로도 어느 정도 제작의 고통을 맛봐야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이거 참 덥군요. 이런 더운 날에는 아예 도테라라도 입어 보시면 어떻습니까. 되려 시원할지도 모르지요. 이거 참 더워요.

――"게이쥬츠신분" 쇼와 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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