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약한 사람이 많다. 나도 마음이 약해졌을 땐 영화관에 빨려 들어간다. 마음이 거셀 때는 영화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다.
뭘 하더라도 불안할 때에는 영화관에 뛰어들면 조금 안심이 된다. 어두운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다. 영화관 구석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세간과 벗어날 수 있다. 그만큼 좋은 곳은 또 없다.
나는 대부분의 영화를 보고 울게 된다. 반드시 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졸작이니 걸작이니 그런 평가를 할 여유를 가져 본 적이 없다. 관중과 함께 껄껄 웃고 관중과 함께 울었다. 5년 전, 치바켄 후나바시의 영화관에서 "신사도죠와"란 시대극을 보았는데 지독히 울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서 그 영화를 떠올렸더니 오열이 나왔다. 쿠로가와 야타로, 사카이 요네코, 하나이 란코 등이 연기했다. 다음 날 아침에 떠올려서 다시 눈물을 터트린 건 아무리 그래도 이 영화 하나뿐이다. 어차피 비평가들은 대졸작이라 말할 테지만 나는 내내 본의 아니게 울었다. 그건 좋은 영화였다. 누구 감독 작품인지는 몰라도 그 작품 감독에게는 지금이라도 인사를 해두고 싶을 정도이다.
나는 영화를 우습게 여기는 걸지 모른다. 예술이라 여기지 않는다. 단팥죽 같은 거라 본다. 하지만 사람은 예술보다도 단팥죽에 감사할 때가 있다. 아니 감사할 때가 많다.
역시 5년 전 후나바시에 살 때의 이야기인데 갑갑해서 갈 곳도 없이 이치카와까지 나갔다. 그리고 가져온 책을 팔아 그 돈으로 영화를 봤다. "오빠동생"이란 영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도 많이 울었다. 몬이 울면서 항의하는 게 참을 수 없이 슬펐다.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화장실로 도망쳐 울었다. 그것도 좋았다.
나는 외국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화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고 그렇다고 화면 구석에 쫄래쫄래 고개를 내미는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문장을 천천히 살피며 읽는 경향이 있어서 도무지 쫓아갈 수 없다. 정말로 지치는 일이다. 게다가 나는 근시인 주제에 안경도 하지 않아 어지간히 앞에 앉지 않으면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나는 어지간히 지쳤을 때에 영화관에 간다. 마음이 약해졌을 때 간다. 져버렸을 때기도 하다. 누구도 내 얼굴을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 조용히 앉는다.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때에만 영화를 보니 어떤 영화나 뼈에 사무친다.
일본 영화는 그런 패배자의 마음을 목표로 만든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야망을 버리세요. 작고 다소곳한 집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부자에게는 부자의 어두운 불행이 있는 법이지요. 포기하세요. 그렇게 가르쳐준다. 세상의 패자란 이 상냥한 위로에 눈물은 흘리되 원하는 바는 얻지 못하리라.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나는 잘 구분할 수 없다.
관객의 자격이란 먼저 순수해야 한다. 황당무계함을 믿어야 한다. 오오코치 덴지로는 반드시 시합에 이겨야만 한다. 어떤 교양 있는 부인은 "오오타니 히데오란 배우는 듬직해서 좋죠. 그 사람이 등장하면 어쩐지 안심이 되니까요. 결코 지는 법이 없죠. 예술 영화는 지루하기만 해요"하고 웃었다. 아름다운 의견이다. 똑똑한 체 했다간 손해만 본다.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존재다. 코쿠기칸에서 스모를 보면서 진지한 얼굴로 "어떤 것이나 예술의 극치는 같은 법이지요"하는 감탄을 내놓는 건 바보 같은 작가나 할 일이다.
어떤 일이나 생활 감정은 같은 법이지요, 라면 차라리 온당하지 싶다.
하물며 영화와 소설을 소위 '극치'에 두고 같은 선에서 볼 건 없다. 또 너무 독자성만을 추구하여 배제하기만 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의사와 스님이라도 길거리서 만나면 서로 목례를 하지 않는가.
앞으로의 영화는 꼭 "패자의 양식"을 목표로 만드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어쩌면 역시나 어깨가 좁은 사람들뿐이지 않을까. 니치게키를 둥글게 두르고 있는 입장자의 긴 행렬을 보면 나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진다. "영화라도 볼까." 그 말에는 역시 무기력한 패자의 한숨이 숨어 있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약자를 위한 위로의 테마가 아직 당분간은 영화 밑바닥에 맺혀 있지는 않을까.
'고전 번역 > 다자이 오사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년과 여학생 - 다자이 오사무 (0) | 2021.12.27 |
---|---|
마나고야 - 다자이 오사무 (0) | 2021.12.22 |
일문일답 - 다자이 오사무 (0) | 2021.12.20 |
도당 - 다자이 오사무 (0) | 2021.12.18 |
오다 군의 죽음 - 다자이 오사무 (0) | 2021.12.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