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감당
콘 토코 군은 학문을 좋아하는 미소년이다. '분게이순슈' 2월호에 카츠라가와 츄료의 케이린만로쿠를 인용해 고류큐후부츠시시후의 저자 사토 소노스케의 부족한 학문을 비웃었다. 소려한 문장풍모가 바람에 살랑이는 아름다운 나무를 방불케 한다. 단지 의심스럽다. 콘 군 또한 석감당의 기원을 알고 있으랴. 콘 군은 카츠라가와 츄료와 마찬가지로 함께 세이겐슈키의 설을 믿는 자이다. 하지만 이시칸토에 관한 설은 세이겐슈키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안사고가 급취장(사유)의 주석에도 "衛有石碏鄭有石癸斉有石之紛如其後亦以命族石敢当"라고 되어 있다. 무엇이 옳은지는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터이다. 서씨필정서 말한다. "二説大不相侔亦日用不察者也"하고. 그렇다면 그 기원을 모르는 게 비단 사토 소노스케 군만 있지는 않을 터이다. 카츠라가와 츄료 또한 모른다 해야 한다. 콘 토코 군 또한 모른다 해야 한다. 모르면서 모르는 사람을 비웃는 사람은 어떻게 비웃어야 좋으랴. 생각하기에 명황이 꿈 속에서 본 종규처럼 패관의 망탄일 뿐이다. 석감당 또한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고 무가유향리의 영웅일 따름이다. 만약 또 석감당의 출처를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을 바람에 쌀과 보리가 살랑일 적에 고독한 허수아비에게 물으면 된다.
음담
듣기로는 가키 1 선생께서 사사키 미츠조 군의 글을 칭찬하며 음담을 소재로 삼기를 권했다 한다. 이 참 무례한 일이다. 사사키 군은 온후한 군자라서 다행히 선생의 말을 받아들여 햇살이 드는 강가와 같은 글에 음담이란 제목을 붙였다. 사사키 군이 마치 혈기왕성한 장사가 되어 비수로 선생님을 찌른 것만 같다. 그 글을 음담으로 칭하는 자 중에 명나라 시대의 지산 축윤명이 있다. 윤명의 자는 희철이라 하여 적잖은 글을 공격하며 기질이 횡포했다. 한 번 붓을 휘두를 때에는 천 마디에 이른다고 한다. 또 필법주경, 풍운소산이라고도 불렸다. 그렇게 두 왕조 동안 학자로 이름을 날린 희철의 글은 형식과 뜻을 모두 아울러 고금에 두루 영향을 주었다. 이름이 날릴만한 이유다. 하지만 사사키 군은 동파가 다시 세상에 나온 듯한 재인이라 지산에 비해 부족할 게 없다. 이런 사람의 글을 외담으로 부르는 건 진주를 생선 눈이라 부르는 꼴이다. 나그네여, 어쩌다 '분게이순슈' 2월호를 읽는다면 가키 선생님의 멍청함을 비웃고 사사키 군이 그에 굴함을 한탄하길 바란다. 사사키 군, 부디 안심해도 좋다. 자네를 아는 사람 중에 나그네는 없으리라.
홍당무
에구치 군은 프롤레타리아 문호이다. '분게이순슈' 2월호에 '키리스테고멘'이란 글을 실었다. 논지는 곤오와 날카로움을 겨루고 문사는 변왕과 빛을 겨룬다. 그야말로 당대의 장관이다. 에구치 군이 논하길 "세월을 보기에 대략 일 년, 프롤레타리아 논객은 간단히 논단을 점령했다". 참 장렬하다. 에구치 군이 또 논하길 "창작단의 첫 문과 두 번째 문, 혼마루도 언젠가 함락될 여지가 보인다". 에구치 군이 거듭 말하길 "프롤레타리아 문학 부흥과 함께 색을 물들인 홍당무가 배출되고 있다". 이 또한 참 통쾌하다. 단지 나그네가 어리석은 머리를 굴려 보기에 만약 프롤레타리아로 급변한 소설가, 비평가, 희곡가를 홍당무라 부른다면 그 논단을 점령하고 또 창작단의 첫 문, 두 번째 문, 내지는 혼마루마저 점령하려 하는 아무개 선생 또한 홍당무가 아닐까. 조금 의문이다. 또 나그네의 소견에 따르면 홍당무의 번식이란 프롤레타리아 문예가 부흥하기 이전 러시아 혁명에 기반을 두고 있을 터이다. 만약 그렇다면 에구치 군도 오래된 홍당무일 뿐이다. 또 에구치 군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근래의 홍당무는 에구치 군의 소설에 감흥하고 에구치 군의 논평 덕에 일어난 신진기예 청년이지 않을까. 그렇게 물드는 걸 도와놓고 이를 홍당무라 매도하는 건 지독히 매정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들어다오, 가는 홍당무들의 곡성을. 문단의 밤이 움직이려 하는걸. 하지만 옛사람도 말하지 않았던가. "영웅이 어찌 아이와 여자에게 정을 주는가"하고. 산객은 에구치 군이 정이 있는 사람이라 믿는다. 만약 정이 없다면 에구치 군 또한 홍당무일 뿐이다. 에구치 군 또한 홍당무일 뿐이다.
×
타나카 쥰 군은 '분게이순슈'의 가십이 비속에 빠진 걸 비난하며 "고금의 문인 중 누가 성기가 크고 작음을 논하는가"하고 말했다. 우리 또한 다나카 군의 의협에 성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속된 가십을 기뻐하는 건 옛사람도 요즘 사람보다 못할 게 없다. 타니 산잔, 모리타 셋사이 두 사람의 필담을 기록한 "이가필담"이란 글도 있지 않은가.(산잔은 귀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아직 그 글을 보지 못했으나 이치지마 슌죠 씨의 "수필뇌산양"에 인용된 걸 읽으면 옛사람 또한 다나카 군이 믿는 것마냥 성기의 크고 작음에 냉담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요즘 사람보다 발랄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해도 좋다.
"산양이 잠시 치쿠토의 큰 성기를 놀렸다. 치쿠토가 이에 크게 화가 나서 직접 성기를 그려 '산양 선생, 내 성기가 크다고 말하셨소. 소인의 음경은 겨우 이럴뿐이오'하고 적어 산양에게 보냈다. 화공 오다유리자에 존재한다. 왈 '이는 축소한 거겠지. 원본은 분명 클 거야'하고 주위는 크게 웃었다.(이에 문인은 치쿠토를 축소 선생이라 불렀다.)" (원문에 섞인 한자는 가나를 섞어 다시 썼다.)
우리는 요즘 사람은 과소평가하면서 옛사람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를 적잖이 본다. 또 같은 요즘 사람이더라도 바다 옆에 사는 문인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별 차이 없는 인간이다. 혹은 우리의 옆으로 끌고 와 이야기해먹기에 충분한 사람도 의외로 적다 해야 하리라. 이렇게 말하면 호언장담처럼 들릴지 모르나 어찌 되었든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보는 것 또한 위생상으로 꽤나 필요한 일이다.
×
당대 사람을 매도하는 게 위험한 건 조구북의 "첨폭잡기"서 그 좋은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남창에 이태허란 사람이 있었다. 명나라 숭정 중 열경에 올랐다. 국변에도 죽지 않아 스스로 자리서 내려와 청나라가 들어선 후 고향으로 들어온다. 서거원이란 자가 과거에 이를 비웃었다. 하루는 태허가 병을 앓았다. 태허가 말하길 "병을 앓아 일어설 수조차 없다" 거원이 말하길 "공의 수명은 길다 절대 죽지 않는다" 이를 바꿔 말하면 " 갑신을유(명이 멸망한 마지막 해)에 죽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죽을 일이 없다." 태허는 화를 냈다. 화내 마땅할 일이다. 또 거원은 극을 하나 만들었다. 이 극이란 게 태허와 공지록이 도적패가 되었는데 청나라 병사가 오는 걸 듣고는 급히 도망쳐 항주에 이른다. 그럼에도 병사가 쫓는 사실에 놀라 악비의 묘 앞에서 철로 된 진회의 부인 다리 아래에 숨는다. 그런데 이 철상이 월경을 했는지 병사가 지난 후 기어나와보니 두 사람의 머리가 더러워져 있었다는 내용이다. 태허가 이 극이 유행함을 듣고 마침 남창을 찾은 공지록과 함께 남몰래 사람을 불러 극을 보았다. 연기하다 철상의 다리 사이서 나오는 곳에 이르자 두 사람이 저도 모르게 대통곡을 하면서 "갖은 걸 떨치고 여기까지 왔다. 그것을 아쉬워하진 않겠다. 허나 나이 어린 것이 이렇게나 모독하는가.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겠다"하고 말했다. 요컨대 거원을 언젠가 찔러 죽이겠다는 말이다. 생각하기에 자살을 두려워 않는 자는 타살도 두려워 않는다. 거원이 이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대 사람을 매도하여 끝내 칼의 원념을 샀다. 농담도 어지간히 할 줄 알아야 한다.
- 아쿠타가와의 아호 [본문으로]
'고전 번역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들의 웃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2.08 |
---|---|
안두의 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2.04 |
의혹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2.01 |
모리 선생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1.29 |
사이고 타카모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11.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