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예술에 주의란 건 없지 싶다. 예술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주의이다.
그런 걸 옆에서 보내 제각기 다른 주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Emile Zola는 자신의 예술에 자연주의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쓰는 사이에 서서히 그 주의란 것에 얽매여 버렸고 느즈막에 낸 두세 개의 작품은 굉장히 지루해졌다.
얼마 전엔 이탈리아의 Fogazzaro가 죽었다. Il Santo(Fogazzaro의 소설)에 드러난 가톨릭교에 동정하는 심리를 종교의 억압을 받아 더욱 보수적으로 드러내 죽기 전에 한 소설을 썼다. 하지만 이는 가톨릭주의가 되어 예술상의 품질은 전보다 떨어지고 말았다. 무엇이든 주의로 굳어버리면 안 되나 보다.
자연주의란 건 단지 자연에 접촉하듯이 쓰는데 의의가 있다고 보면 된다. 예술이란 건 원래 그래야 한다.
자연주의란 것에 무섭고 나쁜 뜻이 있다는 듯이 말하는 건 벽창호거나 잘 되라고 하는 소리거나 둘 중 하나다. 좀 더 이상한 건 자연주의란 자유연애주의란 설이다. 자유연애는 사회주의자가 주창하는 것이지 예술의 자연주의란 무관하다. 자유연애가 작품 속에 드러나더라도 그건 서양에서 한때 간통 소설이니 간통 각본이니 하는 게 문제가 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예술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요즘엔 자연주의가 화제에 오르는 일이 적어지고 대신 개인주의란 게 논해진다.
예술이 사람의 내면생활을 주 대상으로 삼는 이상은 예술이란 올바른 의미서 개인적이다. 이 의미 속 개인주의란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방유주의라 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국가 같은 걸 이 개인주의가 파괴하는 일은 없다.
Stirner의 인생관처럼 갖은 개념을 파괴하여 하염없이 자아만을 남긴 채로 이에 개인주의라 이름 붙인 경우가 있다. 이는 무정부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자아주의다. 이기주의다.
이기주의는 윤리상 배척해야만 한다. 개인주의란 넓은 이름 아래에 여러 사상을 담아두고 그걸 배척하려 드는 건 난폭한 일이다.
무정부주의와 그와 함께 뿌리내린 사회주의를 배척하기 위해 개인주의란 막연한 이름을 붙여 예술을 박해하는 건 나라를 위해 자제해야 할 일이다.
학문의 자유연구와 예술의 자유 발전을 막는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
'고전 번역 > 모리 오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츠메 소세키론 - 모리 오가이 (0) | 2023.03.01 |
---|---|
한산습득 후기 - 모리 오가이 (0) | 2023.02.28 |
내가 열네 살 때 일 - 모리 린타로 (0) | 2023.02.26 |
'현대어 번역 겐지모노가타리' 서문 - 모리 린타로 (0) | 2023.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