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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모리 오가이

내가 열네 살 때 일 - 모리 린타로

by noh0058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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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생활은 다 먹어버린 밥과 같다. 밥이 소화되어 살아 있는 즙이 되어 생활의 토양이 되듯이 과거의 생활은 현재 생활의 바탕이 된다. 또 앞으로 생활의 바탕도 되리라. 하지만 생활이란 특히 몸이 튼튼하여 생활하는 자는 하나같이 먹어버린 밥마저 생각할 여유를 지니지 못한다.

 나는 바쁜 사람이다. 과거 생활을 생각할 새가 없다. 좀 더 나이를 먹어 현재가 공허해지거나 미래도 배기구 아래 공기처럼 서서히 희박해진다면 돌아보는 일은 있으리라. 어찌 됐든 먼 미래의 일이다.

 내가 명사라서 이런 걸 묻는다는데 그 명사란 것도 좀 우습다. 사실 나는 아직 무엇 하나 성공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무언가 성공하려 마음먹고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생각한다. 그것도 공상으로 끝날지 모른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열넷일 땐 어땠는가. 기억은 굉장히 희미하다. 내 기억은 무언가 중요한 것에 집중되어 있으니 그 이외에 건 굉장히 신뢰하기 어렵다. 그러니 자신이 지나 온 길 따위 잿빛이나 다름없다. 혹은 고스란히 소멸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창고와 같은 깊은 곳에 담긴 건 확실하니 살짝 꺼내 봐보고 싶다.

 나는 시마네 카노아시군 츠와노쵸에서 태어났다. 사만 삼천 석 되는 카메이 님의 성아랫마을로 산속 협곡 같은 곳이다. 겨울이 되면 멧돼지가 성아랫마을에서 날뛴다. 그럼 아버지가 죽창을 들고나간다. 나는 어머니와 창문 안으로 들어가 그 구멍을 통해 멧돼지가 눈발을 날리며 뛰는 걸 본다.

 그 츠와노에서 도쿄로 올라온 게 질문받은 열네 살쯤의 일이지 싶다. 몇 년 몇 월이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님이 카메이 님의 옆을 지키게 되었기에 나도 따라가게 된 것이다. 지금은 백작이 되신 할아버지께서 무코우지마 스사키에 저택을 갖고 계셨다.

 나는 혼고 이키사카에 자리한 독일어 학교에 들어갔다. 무카이지마서 거기까지 가긴 머니까 칸다 오가와마치에 위치한 니시 아마네 선생님의 집에 신세 지게 되었다.

 토요일에는 무카이지마로 간다. 일요일 하루 동안 놀다가 니시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시절엔 하가시바시 아래를 건넜다. 아버지께 일주일 용돈으로 잇슈를 받았다. 잇슈로선 요즘 사람들은 알아듣기 어려울까. 육 전 이 리 오 모이다. 이를 쓰면서 나룻배삯을 남겨둬야 했다. 나룻배삯은 분큐 하나, 즉 일 리 오 모였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 무카이지마에 가야 하는데 그 분큐가 없었다. 곤란한 참이었는데 나룻터 옆에 나뭇가게가 있는 걸 보고 접수처 할아버지께 나룻배삯 삼게 분큐 하나만 내일까지 빌려달라 말했다.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면서도 돈은 내주었다. 나는 그 말이 불쾌하긴 했으나 필요했으니 빌렸다. 다음날 그걸 들고 돌려주러 가니 할아버지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나는 화가 나서 할아버지 얼굴에 돈을 던지고서 열심히 도망쳐 왔다.

 떠오르는 건 이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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