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라 하면 사랑이나 색정 등 여러 방면의 소재로 쓰이나 나는 크게 바깥으로 둘러 색채로 본다. 대신 조금 번거롭다.
색은 어찌 됐든 흰색이 바탕이 되기 마련이다. 이에 여러 색채가 꾸며진다. 여자 얼굴색도 하얗기만 해선 안 된다. 여자 얼굴은 까무잡잡한 게 좋으나 이것도 까무잡잡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하얀 바탕이 있어야 비로소 그 까무잡잡함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색이 하얀 건 일곱 어려움을 감쳐준다. 옛사람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저 색이 하얗기만 하고 뜻이 뚜렷하지 못한 여자 얼굴은 노랗게 보이는 거 같다. 나쁘게 말하면 창백하게 보이기도 한다. 정말로 색이 하얗다면 윤곽이 곱상하진 못해도 대개는 미인으로 보이리라. 내 편견일지 모르나.
같은 히지리멘의 나가지반을 입더라도 입는 사람에 따라 그게 검붉게 보인다. 보라색 하오리를 입더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선 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청색이든 푸른색이든 역시 입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두컴컴한 게 본래 색을 어딘가로 감추고 만다.
요컨대 그 색을 보여준다는 건 그 사람의 실력에 달린 일로 마치 화가가 색을 내는데 큰 수완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유젠 나가지반은 히지리멘 나가지반보다 색을 발휘하는 게 훨씬 쉽다. 요컨대 유젠은 색이 섞여 있기에 그 여자의 색이 하얗고 하얗지 않고와 무관하게 유젠의 색과 여자 얼굴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게 어렵지 않다. 히지리멘은 그렇지 않다는 건 앞서 말했다.
이를 두고 보기에 어떤 의미에선 순수한 색을 내는 건 어렵다 할 수 있다. 그럼 혼탁한 색이 유행할만하다. 그 에비챠하카마는 이러한 약점을 가장 드러내는 거라 말해야 하리라.
또 같은 등껍질 안경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선 그 윤기가 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인품이나 얼굴에 크게 기대는 것이다.
모든 색의 조합도 그렇고 빗이든 비녀이든 하나같이 사람 쓰기에 따라 제각기의 특색을 발휘하는 법이다.
요즘에는 드러내는 하얀 양말이 단단하게 보이는 여자가 있다. 여자 발이 단단하게 보여선 결코 미인이라 할 수 없다. 하얀 양말에 조화될 정도의 여자는 적다. 미인이 적기 때문이다. 양말 이야기하는 김에 말해두겠다. 요즘엔 더러운 하얀 양말을 신는 사람이 많다. 일부러 새로운 걸 사지 않는다. 잘 빨면 깔끔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가게의 여주인이 잡상인이 등딱지 빗을 팔러 왔을 때 마침 한텐을 입고 있었다. 그걸로 왼손을 받치곤 몸을 꺾어 왼손을 기울게 높게 들고 빗을 밝은 곳에 비춰 보았다. 그 용모와 어울리지 않아 무어라 말할 수 없었지만 빗의 색을 보는 건 그런 태도여야만 한다. 이를 손바닥에 얹어 뒤집어 보면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었으리라. 이것도 어떤 의미로 색의 연구인 것이다.
여하튼 안경이든 비녀이든 빗이든 잡동사니 가게에 있을 때보다, 또 부풀어 오른 시마다 안에 있는 것보다 꺼내서 손에 쥐었을 때에 진정한 색이 나온다.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가지반 끈을 풀 때에 색을 드러내는 건 이와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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