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뵙습니다.
별달리 새로운 의견도 아닙니다만 저의 지론을 요약해봅니다.
하나, 가부키극은 옛되고 순화되었기에 좋은 것이지 이를 현대풍으로 혹은 통속적으로 꾸며서는 모처럼의 가치가 사라진다. 때문에 이를 영리사업과 연결짓는 건 가부키극에겐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만약 현재의 관중이 역사물을 좋아한다면 가부키극에서 분리된 대중시대극(이미 이런 종류의 연극이 소위 가부키 배우의 손으로 상연되고 있다)을 주면 된다. 단 순수한 가부키 배우는 현대의식을 담은 대중 시대극은 연기하지 않으리라.
둘 소위 신파극은 사라져야 한다. 문화적 의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단 신파 배우는 사라져선 안 되며 또 말 그대로 사라지지 않으리라. 즉 현재 신파배우 중 장래유망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소위 '신파 느낌'에서 벗어나 현대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리라. 그럼 그때는 이미 신파 배우가 아닌 현대극 배우이며 신파극의 오늘날 모습은 도심에서 자취를 감추리라.
셋, 신극은 가까운 장래에 현대 대중극(물론 문화적 의의를 가진)과 선구적, 순예적 연극과 분리해야만 한다. 이는 물론 정도의 문제이나 하나론 직업적으로 대극장이 진출하고 하나론 연구적인 소극장에 모이게 되리라. 오늘날의 신극이 가진 병폐 내지 위기라 불리는 건 연구극으로 밖에 통용되지 않는 게 직업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현대통속극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좋으나 전문가에게 기대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한단 정도는 알아서 나쁠 게 없으리라. 더욱이 선구적, 연구적, 예술적 연극을 목표로 하는 일도 이는 '아마추어라도 어느 특수한 일면에서' 그 의도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며 결코 프로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아마추어도 잘못된 수업만 피한다면 언젠가는 한 사람 몫을 하는 전문가가 된다. 그때 그들 중 대부분은 시대적으로 선구자일 수가 없다. 스스로 보편성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얄팍하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건 별개로 치자). 더욱이 연구적인 일을 계속할 수 없다(처자식을 길러야 하는 등). 따라서 예술적 입장을 지키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단 사정이 생긴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시대부터 떠밀러 올려지고 또는 다음 시대에 그 자리를 양보하여 자신은 소위 '직업인'이 되는데 안주해야 한다. 그곳에도 물론 의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즉 만약 그들을 받아 줄 수 있는 상업 극장이 있다면 그러한 무대를 조금이라도 '예술적으로', '신시대적으로' 자극 발전시킬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신극은 그런 당연함이 없었다. 이는 오늘날 상업 극장이 가부키와 신파의 전통으로 굳어져 '신시대적으로도' 받아 들여지기 어려웠기 때문도 있으나 한편으로 신극이 한사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으며 또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삼스레 '선구적'이지 않게 된 '신극'의 고참자들이 필요에 쫓겨 '직업적으로' 자생하지 못한다 해도 그건 누구의 죄도 아니다. 본인들의 죄이다. 거기서 황급히 '신극'의 흥행적 가치를 생각한 셈인데 본래 '보편성'의 길에 오르지 못한 불구적 연극인 신극이 상품이 될 리도 없다. 이를 억지로 상품으로 삼으려 하니 '신극+비연극적 요소'란 사기나 다를 바 없는 걸 쥐어짜게 된다.
우리는 신극을 지금 상태에서 구해내야만 한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하게 되리라. '집을 세우고서 기둥을 세워야 하는 시대'가 기어코 와버렸다.
젊은 사람들은 부디 정도를 밟으며 순수하게 선구적 색채를 보여줬으면 한다. '신극'의 이름은 제군에게 주어져 있다. 이는 물론 부모의 등골을 파먹을 각오를 해야 하리라. 어서 돈을 원하면서 심지어 잔재주가 싫은 사람들은 곧장 '본질적 현대극 전문가'의 기술을 얻어줬으면 한다. 그러한 기술 습득자가 장래에 협력일치해 신선하며 중후한 직업극단을 만들 준비를 해줬으면 한다. 이상.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짧게 대답하란 의뢰를 무시해 특별히 장소를 받았으니 이 정도로 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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