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소위 국민연성의 효과에 관한 것이나 나는 이 연성이란 말뜻을 특정 단체 내지 기관이 그 기획으로 일정한 인원을 모아 어떤 방식을 따라 일정 기간 연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국 그 자체의 필연적인 압력이 오히려 일종의 지도력, 추진력적인 작용이 되어 국민전체의 자각과 분발을 촉진해 거기서 기대치 않은 '연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란 것도 포함해 생각하고 싶다.
연성에는 본래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이 존재해서 이 양면은 일본적인 '행동' 같은 형태로 통일해야 한단 건 일찍부터 알려진 바이나 일반적으로 그 취지가 어느 정도까지 철저한지는 조금 의문이다.
요컨대 지도자와 연성을 받는 자 사이에 과연 공통된 희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내가 아는 범위에선 어디든 그게 유야무야로 끝나고 단지 무언가 효과가 있을 거라는 정도로 양쪽 모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연성 그 자체의 '방법'에만 너무 정신이 팔려 무엇을 위해 어떠한 이상을 가지고 그게 이뤄져야 하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철저하게 생각하는 일이 생각보다 드물기 때문이다.
그점까지 가면 청소년 특히 학생의 변화가 상당히 눈에 띈다. 특히 중학교 학생은 예외도 있으나 꽤나 똑부러지기 시작한 듯하다. 심지어 겉모습뿐이나 무언가 그들 사이에 새로운 광명이 솟은 거 아닐까 싶은 풍조를 거리서 이따금 만나본다. 듬직하기 짝이 없다.
단지 나는 '일본인의 연성'이란 점을 두고 일반 국민이 단지 시국의 요청을 따르는 수동적이라곤 못해도 살짝 이를 앙 다무는 듯한 '자기 단련'에 만족하지 않고 역시 지도자들 또한 그런 마음을 먹어 무엇보다 일본인이란 '긍지'를 더욱 고취하고 그에 걸맞는 '귀감'을 몸에 익혀 일본인 상호 사이에 친화와 신념을 만드는 동시에 제각기 입장에서 결코 '실수'하지 않는 품위 있는 국민 일원이 되는 것을 '연성'의 첫 목적으로 걸어야 하는 시기라 본다.
이게 일반 국민 사이에 잘 이해되어 충분한 공명을 얻게 되면 가정 생활에서도 또 사회 생활에서도 한 층 더 비약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걸 위해선 지도자측 또한 꼭 '귀감'이란 말이 가진 일본적인 '아름다움'을 살린 연구법을 연구해줬으면 한다. 이 함축적이며 날카롭고 심지어 종합성으로 풍부한 말의 내용은 말할 것도 없이 '괴로움'과 '좋음'의 혼일융합이며 '길을 서두르는 걸로 각오를 붙인다'는 일본인 독특의 직관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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