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절 아침, 한 영화배우의 무대 연기를 보기 위해 수많은 구경꾼이 마루노우치의 아무개 극장에 몰려들어 긴 행렬을 이루었다 했다. 그게 전부라면 별 문제야 없지만 너무 많은 인원이 길을 메워 백 명의 경관이 정리에 나섰음에도 군중은 그 제지를 듣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혼란의 끝에 부상자마저 나왔고 끝내 해산을 명령받았다고 한다. 참 바보 같은 이야기다.
내가 그 현장을 목격한 건 아니나 듣자 하니 군중의 칠 할이 남자, 그 절반은 남자라고 한다. 또 사건에 대한 의견을 요구받았기에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우연찮게 현대 일본 문화의 병폐를 확대한 것으로, 여러 각도로 분석할 수는 있어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생활의 빈곤함" 그 자체를 드러낸 일 아닐까 싶다.
아무리 매력 있는 여배우라 한들 그 무대를 접하려는 욕구가 평범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은 것, 요컨대 추한 무언가를 노출하는 걸 스스로 깨닫지 못한 점에서 군중 하나하나의 '행실'의 부족함이 고스란히 보인다. 그뿐 아니라 평판이 좋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봐야 한다는 심리가 얼마나 조급하고 긴박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대강 보이리라 믿는다.
요컨대 판단 기준이 애매하기 짝이 없으며 정신적으로 공허한 사람들이며 달리 즐길 거리가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시국상 불건전하다는 견해는 제쳐두고, 나는 우연히 그 극장에 모인 사람들만 나무랄 생각은 없다. 현대 일본인 중 대다수는 그런 경향을 지니고 있으니, 나는 되려 교육가와 위정자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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