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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창작여담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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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여담 같은 거라도 적어주세요. 편집자의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다소 부끄러운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부끄러운 건 작가 쪽이다. 이 작가는 아직까지 무명으로 창작 여담은 고사하고 창작 자체를 잃어버릴 뻔하고, 뒤쫓고, 생각하고, 등을 돌리고, 혹은 일어서고, 독서, 이따금 화를 내고, 거리를 방황하고, 걸으며 시 한 편 쓰고. 그런 식으로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물러 터진 문학서생 상태이기에 창작여담이란 부탁에 네 그렇습니까 하고 여타 선생들답게 고심담을 그럴싸하게 써내는 그럴싸한 행동은 할 수 없다.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나는 일부러 못 한다고 말한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말한다. 문단 상식을 깨야 한다고 완고히 믿기 때문이다. 상식은 좋은 것이다. 상식에는 따라야만 한다. 하지만 상식은 십 년마다 비약한다. 나는 인간 세상의 갖은 현상 파악에 관해서는 헤겔 선생을 지지한다.
 사실은 마르크스, 엥겔스 두 선생을,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아니, 레닌 선생을,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이 작가는 본래 언행일치란 것에 기묘할 정도로 집착하는 남자라 아니아니, 그렇게도 말하면 안 될까. 이 작가가 본래 비참함을 사랑하는 취미가로서 안심입명의 경지에 눈을 두어 모든 붕괴의 전제가 될 아아, 이 뒤의 말은 누군가 뜻있는 사람이 이어주길.
 이렇듯 작가는 게으름뱅이다. 비겁하다. 삶아도 구워도 먹을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른 모양이다. 이런 내가 미울까.
 미울 건 없으리라. 나는 지금의 이 세상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여 당신들에게 말을 건 것이다. 나는 지금 이 현실을 사랑한다. 농담에서 말이 튀어나오는 현실을.
 알 거 같나? 불쾌한가?
 너 스스로가 자신이 불쾌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너는 무력하다.
 비난은 자신의 약함이니까. 치하는 자신의 강함이니까. 부끄러워해야지.
 자기변호가 아닌 문장을 읽고 싶다.
 작가란 허세가 있어서 자신이 남 몰래 고심한 작품도 고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과시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는 내 첫 작품집 '만년' 241 페이지를 고작 삼 일 밤만에 써냈다. 그렇게 말하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 또는 그건 십 년 걸렸습니다 하고 기특하게 고개 숙이고 있으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태도를 확실히 해줬으면 한다. 천재의 기적인가 혹은 견마지로인가.
 아쉽게도 내 경우엔 견마지로고 자시고 흥이 깨지는 말로 송구할 뿐이지만 인분지로, 땀을 흘리며 겨우 쓴 게 이백 가량의 페이지였다. 그것도 결코 혼자만의 힘이라 할 수 없다. 수십 명의 지혜로운 선현들의 손을 잡고 겨우겨우 기초부터 배워 겨우 한 권 간신히 만들어냈다.
 재미있나?
 조금 농담이 지나친 모양이다.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삼일 밤을 숙고했을 터이다. 세간의 상식이란 걸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로 다음 시대의 작가이다. 그건 믿어야만 한다. 그곳에 자리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뜻이 있는 건 여러분에게도 통했으리라 믿는다.
 나는 요즘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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