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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다자이 오사무

봄 - 다자이 오사무

by noh0058 2021.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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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서른일곱이 되었습니다. 요전 번에 어떤 선배가 잘도 살아 있다고 뼈에 사무친 듯이 말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서른일곱까지 산 게 거짓말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전쟁 덕에 겨우 살아남을 힘을 얻은 듯합니다. 벌써 아이가 둘입니다. 위는 여자아이로 올해로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남자아이인데 작년 8월에 태어나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적기가 공격이라도 할 때면 아내가 아래 아이를 등에 메고 제가 위 아이를 안고서 방공호에 뛰어 듭니다. 저번에 적기가 강하하여 바로 근처에 폭탄을 터트리는 통에 방공호에 들어갈 새도 없이 가족이 둘로 갈라져 옷장으로 뛰어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쨍그랑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 위에 애가 어머 유리가 깨졌어하고 공포도 무엇도 없는 감각으로 무심히 소란을 떨었습니다. 적기가 떠난 후 소리가 들린 방향을 보니 확실히 방의 창 하나가 박살 나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자리에 무릎을 꿇고 유리 파편을 주웠는데 그 손가락 끝이 덜리고 있어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한 시라도 빨리 수리하고 싶어 아직 공습경보도 해제되지 않았는데 기름종이를 찢어 박살 난 부분에 붙였는데 더러운 바깥쪽을 바깥으로 돌리고 깔끔한 쪽을 안쪽에 붙여 버렸습니다. 아내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제가 나중에 해도 되는데, 엉망진창이잖아요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서로 흩어져야 하는데 여러 사정상, 그리고 주로 돈의 사정으로 꾸물거리는 사이에 봄이 되어버렸습니다.
 올해 도쿄의 봄은 북쪽의 봄과 아주 닮아 있습니다.

 눈이 녹아떨어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윗 아이는 항상 양말을 벗고 싶어 합니다.

 올해 도쿄의 눈은 40년 만에 내리는 대설이라고 합니다. 제가 도쿄에 온지 이래저래 15년 정도 지났는데 이런 대설은 처음입니다.

 눈이 녹는 것과 동시에 꽃이 피기 시작하다니 정말로 북쪽의 봄과 닮아 있군요. 꼭 고향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대설 덕이었습니다.

 지금 윗아이가 맨발에 구두를 신고 녹이 내린 길을 따라 엄마와 함께 목욕을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공습은 없는 모양입니다.

 출정하는 어린 친구의 깃발에 남아 필생 위기일발이라 적어 주었습니다.

 바쁜 녀석도 한가한 녀석도 나란히 아슬아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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