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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노로마 인형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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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로마 인형으로 공연을 할 건데 보러 오지 않겠나. 불쑥 그런 초대를 받았다. 초대 해준 건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면으로 그 사람이 내 친구의 지인임을 알 수 있었다. "K 씨도 오신다고 하셨으니"하고 적혀 있다. K가 내 친구임은 말할 것도 없다――어찌 됐든 나는 초대를 받기로 했다.
 노로마 인형이 무엇인지는 당일이 되어 K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찾아 보니 노로마는 '에도의 이즈미 다유가 연극에 노로마츠칸베이라 하여 머리가 평평한 어두운 푸른색의 인형을 쓴다. 이를 줄여서 노로마 인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적혀 있다. 과거에는 쿠라마에의 후다사시나 나가다시가 즐겨 쓰거나 다이묘의 어용금으로 쓰였다는데 이제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행사 당일 나는 차로 닛포리에 위치한 어떤 사람의 별장으로 향했다. 2월 말의 어두운 저녁이었다. 아직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 햇빛인지 달빛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밝음이 거리에 떠올라 있었다. 나무 싹을 틔우기엔 아직 이르지만 공기는 습기를 머금은 채 어딘가 따스했다. 두세 번을 물어 겨우 이른 집은 인기척 적은 골목에 자리해 있었다. 하지만 상상한 것만큼 한적한 거처도 아닌 듯했다. 옛길의 문을 지나 폭이 좁은 돌길을 걸어 현관 앞에 이른다. 현관 기둥에는 징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옆에 손잡이를 붉게 칠한 봉마저 놓여 있으니 이걸로 두드리란 걸까 싶었더니 아직 손에 들기도 전에 현관 너머에 자리해 있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 오시죠"하고 말했다.
 접수처 같은 곳에서 명부에 이름을 적고 안으로 들어가니 여덟 첩과 여섯 첩의 방을 하나로 합친 어두컴컴한 공간에 벌써 꽤나 많은 손님이 모여 있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대개 양복을 입고 간다. 하카마를 입으면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번잡한 일본의 étiquette에티켓도 바지를 입으면 꽤나 관대하게 봐준다. 나 같이 예절을 잘 지키지 못 하는 인간에게는 굉장히 편리한 일이다. 그런 연유로 그날도 대학 교복을 입고 갔다. 하지만 나 이외엔 양복을 입은 사람이 없었다. 놀라운 건 지인 영국인마저 몬츠키에 하카마를 입고 부채를 들고 있었다. K와 같은 시장 거리 자제가 유유키츠무기 두 겹을 겹쳐 입은 건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두 친구에게 인사를 하면서 자리를 앉을 때에는 스스로가 조금 étranger이방인처럼만 느껴졌다.
 "손님이 이렇게나 모였으니 ――씨도 좋아하시겠어." K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씨가 나를 초대한 장본인이었다.
 "그 사람도 인형으로 공연하는 거야?"
 "그래, 주에 한 번인가 두 번 배운다네."
 "오늘도?"
 "아니, 아마 안 할 거야. 오늘은 베테랑들이 모이거든."
 K는 이런저런 노로마 인형 이야기를 해주었다. 듣자하니 극이 대략 일흔 개 가량이 존재하며 그에 스는 인형이 스무 개 가량 있다고 한다. 나는 이따금 육첩 방의 정면에 마련된 무대 쪽을 바라보며 멍하니 K의 설명을 들었다.
 무대는 높이가 세 척에 폭이 두 간 가량 되는 금박 칸막이였다. K의 말에 따르면 이를 '손잡이'라 칭하며 언제라도 해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그 좌우에는 새로운 삼색 단자 장막이 걸려 있다. 뒤에는 금병풍이 둘러져 있는 듯하다. 어두운 가운데 칸막이와 병풍의 금빛이 하나로 겹쳐져 연기로 그슬린 것처럼 무겁게 저녁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나는 그 간소한 무대를 보고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다.
 "인형은 남자랑 여자로 나뉘어 있어. 남자는 아오아타마니 모지베니 쥬나이니 노승 등으로 불리지." K는 말이 질리지 않는 듯했다.
 "여자도 종류가 있나요?" 영국인이 물었다.
 "여자에는 아사히니 테루히 같은 게 있지. 그리고 아키네니 아쿠바 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야. 그중 유멍한 건 아오아타마인데  이게 원조에서 지금의 종가로 전래된 거라는데……"
 아쉽게도 나는 볼일보러 가고 싶어졌다.
 ――변소에서 돌아오니 전등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손잡이' 뒤편에서 검은 비단 복면을 쓴 사람 하나가 인형을 들고 서있었다.
 드디어 쿄겐이 시작된 것일 테지. 나는 고개를 숙여 가며 다른 손님 사이를 지나 이전 자리로 돌아왔다. K와 일본옷을 입은 영국인 사이 자리 말이다.
 무대의 인형은 남색 스오에 타테에보시를 쓴 다이묘였다. "내가 아직까지 자랑할만한 보물을 지니지 못해 희귀한 보물을 찾고 있다네." 인형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하는 말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아이쿄겐과 큰 차이가 없.다
 이윽고 다이묘가 "일단 요로쿠를 불러 볼까. 여봐라, 요로쿠 있느냐"하고 말하니 "네이"하고 대답하며 검은 비단으로 얼굴을 가린 다른 사람이 타로카쟈 같은 인형을 들고 왼쪽의 삼색 단자 안에서 나타났다. 갈색 한가미시모에 칼을 차지 않은 차림을 하고 있다.
 그러자 다이묘 인형이 왼손을 작은 카타나 자루에 얹으며 오른손을 들어 요로쿠를 가리키더니 이런 말을 한다――"천하를 다스리며 위대해지려면 갖은 보석을 지녀야 하지. 허나 그대가 알다시피 나는 지금 자랑할만한 보물이 없다. 허니 그대는 수도로 올라 희귀한 보물이 없는지 찾아 보아라." 요로쿠 "네이." 다이묘 "서둘러라" "네이", "그래", "네이", "그래", "그럼 나리께는……"――그렇게 요로쿠의 긴 Soliloque독백이 시작되었다.
 인형의 완성도는 지극히 간단하다. 애당초 옷 아래로 다리란 게 없다. 입이 열리거나 눈이 움직이는 후세 인형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지만 그마저도 자주 볼 수 없다. 단지 몸짓만이 있을 뿐이다. 몸을 앞뒤로 기울이거나 손을 좌우로 움직인다――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늘어지며 어딘가 느긋해서 기품 있게 보일 따름이다. 나는 인형을 보고 다시 한 번 étranger이방인 기분이 더욱 강해졌다.
 아나톨 프랑스가 이런 내용을 쓴 적이 있다――시대와 장소의 제한을 벗어난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이 어떤 에술 작품을 즐거워하는 건 그 작품 속 생활과 스스로의 관계를 발견했을 때에 한정된다. Hissarlik히살리크의 흙분 도기는 나로 하여금 일리아드를 더욱 사랑하게 한다. 십삼 세기의 피렌체 생활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신곡을 오늘처럼 감상하는 건 불가능 했을 게 분명한다. 나는 말한다. 갖은 예술 작품은 제작된 장소와 시기를 알아야 비로소 올바르게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나는 금색 배경 앞에서 느긋한 동작을 반복하는 남색 스오와 갈색 한가마시모를 보고 저도 모르게 그런 글을 떠올렸다. 우리가 쓰는 소설도 이 노로마 인형처럼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는 시대와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으려는 한다. 우리를 위해서도, 우리가 존경하는 예술가를 위해서도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바람으로 그치지 않고 사실일 수 있을까……
 노로마 인형은 내 생각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목조로 된 하얀 얼굴을 금박 가림막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쿄겐은 그로부터 사기꾼이 나타나 요로쿠를 속이고 요로쿠가 돌아와 다이묘가 쇠락하는 걸로 끝이 났다. 악기는 샤미센이 없는 시바이의 하야시와 노의 하야시를 하나로 합친 것만 같았다.

 나는 다음 쿄겐을 기다리는 시간을 K와 대화하지 않고 홀로 멍하니 "아사히"를 피우며 보냈다.

(다이쇼 5년 7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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