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언제 적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중국 북쪽의 마을서 마을로 오가는 거리 공연가 중에 이소이李小二라는 남자가 있었다. 쥐에게 연극을 시켜 벌어먹고사는 남자였다. 쥐를 넣은 주머니 하나, 의상이나 가면을 넣은 상자 하나. 그리고 무대 역할을 하는 작은 노점 같은 것 하나――그 외에 건 특별히 지닌 게 없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왕래가 많은 사거리에 선다. 먼저 노점 같은 걸 어깨로 짊어맨다. 그리고 북을 두드리고 노래를 불러 사람을 끌어모은다. 호기심 강한 거리인들은 어른아이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발을 멈춘다. 그렇게 사람들이 주위를 두르면 이는 주머니 안에서 쥐 한 마리를 꺼낸다. 쥐에게 의상을 입히고 가면을 씌운 후 판자의 귀문도로 무대에 오르게 한다. 쥐는 꽤나 익숙한 듯했다. 무대 위를 졸졸졸 걸으며 실 같은 광택을 가진 꼬리를 두세 번 가량 움직이더니 뒷발로 자리에서 일어서 보인다. 경사 의상 아래서 보이는 앞다리의 발바닥이 살짝 붉다――이 쥐가 이제부터 시작될 잡극에서 소위 중역을 맡는 연기자이다.
그러면 아이들이야 처음부터 손뼉을 치며 재밌어하지만 어른은 쉽사리 감탄하지 않는다. 되려 냉정히 담뱃대를 입에 물거나 코털을 뽑아가며 바보 취급하는 눈으로 무대 위를 오가는 연기자 쥐를 바라본다. 하지만 곡이 진행됨에 따라 비단 조각 의상을 입은 정단正旦 1 쥐나 검은 가면을 쓴 정 2 쥐가 차례로 무대 위에 오르고 뛰고 날며 이의 노래나 곡 사이에 들어가는 대사를 따라 여러 동작을 취하는 걸 보면 아무리 구경꾼이라도 겉으로만 냉담하지 서서히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소이도 기운을 받아서 바쁘게 북을 두드리며 교묘하게 한 쥐를 다룬다. 그러며 "침흑강 명비 내유몽 고안 한궁추" 같이 제목을 읊기 시작할 즘이면 노점 앞에 놓은 그릇 안에 어느 틈엔가 동전산이 수북하게 쌓인다………
하지만 이런 장사로 입에 풀칠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애당초 열 흘 가량 날씨가 안 좋으면 입이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여름은 보리가 자라는 시기니 장마라도 시작되면 작은 의상이나 가면에도 곰팡이가 슬고 만다. 겨울도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려 장사가 공치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달리 도리도 없으니 어두운 객사 구석에서 쥐를 상대로 지루함을 풀며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리다 하루가 다 지나고 만다. 쥐는 다 해서 다섯으로, 제각기 이의 부모님 이름과 아내 이름, 그리고 행방을 모르는 두 아이의 이름을 붙여두었다. 그런 녀석들이 주머니 입구에서 기어 나와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서 벌벌 떨며 기거나 신발 끝자락 위에 몸을 비틀어 가며 올라 콩알 같은 검은 눈으로 가만히 주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험난한 세상에 익숙해진 이소이라도 이따금 눈물이 나려 한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따금으로, 굳이 따지자면 내일 하루를 보낼 궁리와 그런 궁리를 억누르려는 정처 없는 불쾌한 감정에 마음을 빼앗겨 애처로운 쥐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심지어 요즘 들어서는 나이 탓에 몸상태도 좋지 않아 더더욱 장사가 몸에 맞지 않았다. 긴 곡조를 노래하면 숨이 헐떡였다. 목도 예전과 달리 시원치 않다. 이래서야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이러한 불안은 마치 중국 북쪽의 겨울처럼 이 가련한 공연가의 마음에서 모든 햇살과 공기를 차단하였다. 끝내는 남들처럼 살아 갈 생각도 미련 없이 말라 가고 만다. 왜 삶이란 이리도 괴로운 걸까. 왜 괴로움에도 살아가야 하는가. 물론 이는 한 번도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괴로움이 부당하다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주는 걸――그게 무엇인지 이는 알 수 없었지만――무의식적으로 증오하였다. 어쩌면 이가 모든 것에 지닌 막연한 반항심은 그런 무의식적인 증오가 원인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모든 동양인이 그러하듯이 이 또한 운명에 굴종하는 걸 비교적 개의치 않았다. 눈보라가 부는 하루를 객사의 한 방에서 보낼 때에 그는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다섯 쥐를 향해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참아라. 나도 배가 고프고 추운 걸 참고 있으니까. 살아가는 이상 괴로움은 당연한 거라 생각해. 심지어 쥐보다는 인간이 더 괴로울지 모른다고………"
중
눈구름으로 어두웠던 하늘은 어느 틈엔가 진눈깨비 섞인 비를 뿌렸다. 좁은 길은 말 그대로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진흙물로 가득 차려 하는 그런 추운 날의 오후였다. 이소이는 마침 장사에서 돌아오는 길이였다. 여느 때처럼 쥐가 들어간 주머니를 어깨에 걸치며 우산을 잊은 슬픔에 쫄딱 젖어 거리 외각의 인기척 없는 길을 걸었다――그때 길가에서 자그마한 묘당이 보였다. 때마침 비는 더 지독해져 있었다. 어깨를 좁히며 걷고 있자니 코끝으로 물방울이 흘렀다. 소매로는 물이 들어갔다. 그렇게 지쳐가던 참이니 이는 묘당을 보고는 황급히 그 지붕 아래로 들어갔다. 일단 얼굴을 닦아냈다. 그리고 소매를 짰다. 겨우 한 숨을 돌려 머리 위의 편액을 보자 그곳에는 산신묘山神廟라는 세 글자가 있었다.
입구의 돌계단을 두세 개 오르자 문이 열려 있어 안이 보였다. 안은 생각보다도 좁았다. 정면에는 거미줄 낀 근갑산신 하나가 멍하니 해가 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판관 하나가 놓여 있는데 누가 장난이라도 쳤는지 목이 없었다. 왼쪽에는 초록 얼굴과 붉은 머릿결을 가진 작은 도깨비 하나가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불쌍하게도 코가 분질러져 있다. 그 앞 먼지 쌓인 마루에 쌓여 있는 건 지전 3일 테지. 어두운 와중에 금지나 은지가 희미하게 빛을 내뿜어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둘러 본 이는 시선을 묘 안에서 밖으로 옮겼다. 그러자 마침 그 순간에 쌓인 지전 속에서 사람 하나가 튀어나왔다. 실제로는 그전부터 거기에 쭈구려 앉아 있었는데 마침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리라. 하지만 이는 정말로 지전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만 같았다. 이는 살짝 놀라서 머뭇머뭇 보는 듯 보지 않는 듯한 얼굴로 가만히 그 인간을 살폈다.
때묻은 도복을 입고 새가 둥지를 튼 듯한 머리를 한 꼴보기 사나운 노인이었다. '하하, 구걸을 하며 걷는 도사로군――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깡마른 무릎을 두 팔로 안고 그 무릎 위에 수염이 귄 턱을 얹고 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어디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역시 비를 피해 왔단 사실은 도복 어깨가 푹 젖어 있는 걸로 알 수 있었다.
이는 이 노인을 처음 봤을 때 무어라 말을 걸어야지 싶었다. 하나는 홀딱 젖은 노인의 모습에서 동정을 느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혹독한 세상 살이가 이런 경우에 먼저 입을 열 개 하는 습관을 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혹은 또 그 외에도 당초의 순수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조금은 더해져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이는 말했다.
"날씨가 참 곤란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노인은 무릎 위에서 턱을 떼고는 처음으로 이를 보았다. 새부리처럼 굽은 매부리코를 두어 번 거창하게 꿈틀거리며 미간을 좁힌 채로 보았다.
"저 같은 장사꾼에겐 비만큼 눈물 나는 일도 없죠."
"하하, 무슨 장사신가."
"쥐를 써서 연극을 하지요."
"그건 또 별난 일을 하는군."
이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노인도 지전 안에서 나와 이와 함께 입구의 돌계단 위에 앉았다. 이제는 얼굴도 또렷이 보였다. 야윈 게 방금 봤을 때하고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는 좋은 대화 상대를 찾은 거 같아 주머니나 상자를 돌계단 위에 내려놓은 채로 대등한 말투로 여러 이야기를 했다.
도사는 말수가 많지 않은지 대답이 시원찮았다. '그렇군', '그렇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이빨 없는 입이 공기를 씹는 듯한 운동을 했다. 뿌리 부분이 더러운 노란색이 된 구레나룻도 그걸 따라 상하로 움직인다――그게 참 보기 꼴사나웠다.
이는 자신도 이 노인에 비하면 여러 의미서 생활상의 승리자지 싶었지. 그런 자각은 물론 유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러한 사실이 이 노인에게 어쩐지 미안한 일인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가 대화 주제를 생활난으로 옮겨 자기 생활고를 일부러 과장해 이야기한 건 이 미안한 마음에 부채질 당한 결과였다.
"정말이지 눈물이 날 정도라고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날도 많아요. 요전 번에도 아주 뼈저리게 느꼈죠. '나는 쥐한테 연기를 시켜 밥을 먹고살고 있지. 하지만 어쩌면 사실은 쥐가 내게 이런 장사를 시켜 먹고사는 걸지도 몰라'하고요. 정말이지 싶어요."
이는 힘없이 그런 말마저 했다. 하지만 도사는 여전히 입을 잘 열지 않았다. 이에게는 전보다 더 심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 사람은 내가 한 말을 묘하게 삐뚤게 받아들인 거야. 괜한 말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이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혼냈다. 그리고 곁눈질하여 노인의 모습을 살폈다. 도사는 얼굴을 이의 반대 방향으로 돌려 비를 맞는 묘 바깥의 마른 버들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상대하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불쾌해지긴 했지만 자신을 동정해주지 않는 불만 쪽이 그보다 더 컸다. 때문에 이번에는 올해 가을에 있었던 메뚜기 재해로 이야기를 돌렸다. 이 지방이 받은 피해부터 일반 농가의 곤궁을 통해 노인의 어려움 또한 긍정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야기 도중에 노도사가 이를 보았다. 거듭된 주름 속에서 웃음을 참는 듯한 근육의 긴장이 있었다.
"당신은 나를 동정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말한 노인은 참을 수 없다는 양 소리 내 웃었다. 새가 우는 듯한 날카롭고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나는 돈이 곤란하지 않은 사람이야. 바란다면 당신의 삶 정도는 보태줄 수 있지."
이는 말을 미처 잇지 못 한 채로 단지 멍하니 도사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미치광이였군.――겨우 그런 반성이 든 건 잠시 동안 눈을 뜬 채로 입을 다물고 있던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반성도 이어진 노도사의 말에 타파되었다. "천일鎰이나 이천일이라도 괜찮다면 지금이라도 주지. 사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거든." 노인은 짧게 자신의 경력을 이야기했다. 본래는 아무개 마을의 도축업자였는데 우연히 여조를 만나 도를 배웠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끝난 도사는 천천히 일어나 묘당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이를 부르고 한 손으로 마루 위 지전을 모았다.
이는 오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묘당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두 손을 쥐똥과 먼지로 뒤덮인 마루 위에 얹고 절이라도 하는 자세를 취한 채 고개만 들어 아래서 도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도사는 굽어진 허리를 어렵게 피며 두 손으로 지전을 들어 올렸다. 그런 지전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바닥에 뿌리기 시작했다. 지전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묘당 바깥의 빗소리를 억누르며 울렸다――지전이 손에서 떨어지는 동시에 무수한 금전과 은전으로 바뀐 것이다………
이소이는 비처럼 내리는 돈속에서 한사코 자세를 낮춘 채로 도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
이소이는 막대한 부를 얻었다. 어쩌다 그 선인과 만난 걸 의심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는 노인이 써준 사구四句를 꺼내 보였다. 아쉽게도 이 이야기를 꽤나 이전에 어떤 책에서 본 작가는 그걸 또렷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대강의 뜻을 번역한 듯한 일본글로 이 이야기의 마무리에 덧붙이려 한다. 이건 이소이가 선인이 왜 구걸을 하며 걷느냐는 물음에 대답한 내용이라 한다.
"인생은 괴롭기에 즐거운 법이요, 사람은 죽음을 의식하기에 삶을 아는 법이다. 죽음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얻는 건 단지 무료할 뿐이다. 선인은 물론이요 범인 또한 그렇다."
아마 선인은 인간의 생활이 그리워져 일부러 괴로운 일을 찾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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