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무라 나오야는 이미 천하가 다 알고 있으니 내 서문도 이 서적에 붙이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단지 요구를 받았기에 '에리코와 함께'의 작가에 관한 나의 시점을 조금 이야기해 볼까 한다.
극작가 우치무라 나오야가 무대 희곡에서 그 재능을 보임과 동시에 라디오 드라마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 전문적으로 보아 거의 일인자에 가깝다 칭해진 건 우연인 듯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극시의 본질과 라디오의 기능을 연결짓는데 걸맞는 재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자세히 논할 여유는 없으나 나 같은 것처럼 연극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일상적으로 접하는 라디오 속 기계 구조에 연구적인 태도로 임한 적이 없으며 생활 필수품으로서도 지극히 냉담히 이용할 뿐이었던 걸 생각하면 우치무라 나오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존재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라디오 드라마란 새로운 예술 형식의 근대성을 일찍부터 몸에 익히고 라디오 청취자란 우리로선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대중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며 가장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필요하면서도 충분한 효과를 살린다는 창작 기술을 터득한 것이다.
'에리코와 함께'는 그런 그의 역작일 뿐 아니라 도쿄방송국의 획기적 사업이나 듣기에 따르면 이 한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구성에는 이따끔 많은 협력자를 두었다고 한다. 이 또한 우치무라 나오야의 라디오 드라마가 소위 수공업적 명인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근대 공업적 규모 위에서 생산되었단 하나의 특색을 보여주는 것으로, 근대 문학의 기계성을 시사하는 바에도 주목해 마땅하다 본다. 이런 면에서도 우치무라 나오야는 이 작품을 통해 그야말로 '시대에 적절한 사람'이 되어 오늘날의 화두를 이끌고 있다 해야 하나, 나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이를 통해 더욱 큰 책임을 지게 될 것이며 앞날에 반드시 난항의 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각오해야 할 터이다.
대중은 욕심이 많고 변덕이 심하다. 수요일 밤은 '에리코와 함께'를 즐긴다 정해두었으리라. 그리고 한 번 그 맛을 본 이상은 우치무라 나오야한테 끌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게 끝이라면 차라리 낫다. 좀 더 다르고 좀 더 뛰어난 걸 요구하게 되리라.
나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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