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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리뷰] 친애하는, 10년 후의 너에게

by noh0058 202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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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의미 없이 들어 올린 책이었다.

으레 그럴지 몰라도,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관으로, 혹은 되는대로 책을 골라온다. 재밌으면 좋고, 아니면 책장에 묻어두면 그만이다. 중고서점쯤 되면 가격도 저렴하니 더욱 그렇다.

 

 

순 직관으로 골라 온 책이다.

 

당시에는 전적으로 책을 팔러 찾은 것이었다. 더군다나 읽고 있는 책도 있었고, 아직 개봉하지 않은 책 박스도 남아 있었다. 때문에 가벼운 게 좋았다.

 

물론 라이트노벨은 예외다. 어느 틈엔가 권수를 쫓아가는 게 버거워지고 있었으니까. 만화도 라이트노벨도 단권이거나 금세 완결 나는 게 좋았다.

 

그런 연유로 요즘은 곧잘 라이트문예를 읽는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말하자면 마침 표지가 이뻤다. 단지 그 이유로 사들고 왔다. 정작 먼저 읽던 책이 있어 펴보지도 않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다만 캠핑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읽던 책은 너무 두꺼웠다. 박스는 읽던 걸 다 읽고 열 생각이었다. 역기 그런 별거 없는 이유로 따라왔다. 가방 머리칸에 실려 뒤통수를 살살 내리치며. 지금 생각해 보면 소심한 복수였을까 싶다.

 

그나마도 열심히 읽을 생각은 없었다. 쌓인 애니가 좀 많았다. 힐다도 보던 중이었고, 마침 귀멸의 칼날도 넷플릭스에 들어왔다. 캠핑이니 라프텔로 밀린 유루캠 2기도 볼 생각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한두 장이나 읽을 셈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독파해내고 있었다.

10년이란 간극이 가진 무게

사실 '친에하는~'은 썩 독창적인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적으면 고등학교 2학년에서 많아봐야 대학교 2학년까지. 10년 전,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썼던 타임캡슐 속 스스로의 편지를 보고 무언가를 바꾸는, 분명 흔해 빠진 이야기이다.

 

단지 내용은 어찌 되었든, 기반이 되는 설정이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이 책의 감상은 조금 달라졌을지 모른다. 중학교 3학년. 5년. 대학교 2학년. 이건 너무 짧다. 초등학교 1학년. 20년. 스물여덟. 이건 또 너무 길다. 초등학교 1학년. 10년. 고등학교 2학년. 이제야 무언가 들어맞는 느낌이 든다.

 

"알아요... 어릴 적 상상했던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나란 전혀 다르죠. 생각한 것만큼 어른이 되지 못했달까."

 

분명한 건 고등학교 2학년은 어린 나이다. 하물며 초등학교 1학년이란 그보다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지나지 않는다. 뒤돌아서 흐릿한 그림자로만 키를 재보면 결국 이 도토리가 저 도토리 같아 보인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1학년의 눈에 고등학생은 어른으로만 비친다. 좀 더 정확히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만 봐도 어른으로 보이니, 고등학생쯤 되면 "무지막지한" 어른으로 보인다. 때문에 무언가 달라지고, 무언가를 이뤄내 있기를 바란다.

 

주인공들은 실제로 달라져 있다. 잘 하길 바라던 건 진작에 관둔지 오래고, 대부분은 제 눈앞에 처한 상황에 막막할 따름이다. 누군가는 제 재능을 깨닫고 겉돌고, 누군가는 잘못된 친구를 사귀었고, 또 누군가는 야간제 고등학교를 다니고, 누군가는 아예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다.

 

돌아보면 잘 안 보일지는 몰라도, 그들은 충분히 당장의 곤경과 굴곡 따위에 처해 있다. 그리고 10년 전 자신이 남긴 편지로 박차를 가해져 스스로를 바꿔낸다. 독자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할 정도로 그럴싸하게.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어렸었다. 좀 더 정확히는 "특히" 어렸었다. 다들 저 혼자 잘 해내는 와중에도, 책상을 꼭 붙인 짝꿍이 온갖 수발을 들어주었다. 선생님 이름은 잊어 먹은 와중에도 그 짝꿍의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럼 그로부터 10년 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달라졌을까. 아쉽게도 그런 기억은 전혀 없다. 어쩌면 타임캡슐을 보내지 않은 탓인지 모르겠다. 그때도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팔푼이였다.

 

그리고 다시, 고등학교 2학년으로부터 10년이 흘러가고 있다. 아직 따라 잡지는 못 했지만 코앞까지 와있다. 이제 와서 새삼 어른이 무엇인지 논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생각한 만큼의 어른이 되지 못 한 건 사실이다.

 

조금 우스운 고백을 하자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어코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될 거란 제 처지가 뭐가 그리 안쓰러운지 닭똥 같은 눈물을 훌쩍이며 잠 못 든 적이 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다. 물론 어른이 되었단 건 아니다. 무뎌졌을 뿐이다.

 

나와 책 속의 주인공들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게 10년이란 시간의 무게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그 무게를 안일하게 보았다. 어느 쪽도 흐려진 기억 속에 담긴 어린 시절로 밖에 인식하지 못했다.

 

그럴 리도 없을 터이다. (체감이야 어찌 될지 몰라도) 10년은 그저 10년일 뿐이다. 0살에서 10살이, 10살에서 20살이, 20살에서 30살이 되는 모든 과정은 분명 평등할 터이다. 주인공들은 그 10년의 간극을 직시할 수 있었다. 비록 형태는 과거의 자신에게 등을 떠밀린 격이지만,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또 스스로 어떤 어른이 되길 바랐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에게 부족한 건 분명 10년이란 무게의 인식과 자성일지 몰랐다.

친애하는 10년 후의 너에게.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10년 후의 나에게 편지 한 통이라도 보내는 게 맞을까. 하다못해 그때만이라도 조금은 어른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

 

아쉽게도 그런 당돌한 성격은 되지 못한다. 뻔히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건 내 안 좋은 버릇이다. 단지 운은 좋다. 마침 블로그를 운영한지 근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과거의 글들을 쫓다 보면, 어쩌면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도 엿보일지 모를 일이다. 혹은 몸서리치고 이불만 걷어차게 될지 모르지만, 그건 그것대로 시간을 자각하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때야말로 정말 편지 하나를 띄어보자. 친애하는, 혹은 친애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길 바라는 10년 후의 나에게.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일을 권하고 싶다. 일단 이 책을 읽는 걸 시작으로.

 

 


 

 

 

친애하는, 10년 후의 너에게

작가: 아마사와 나츠키

출판사: 학산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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