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부?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아니, 써도 되나? 를 넘어서 쓰면 안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너무 좋은 책이었던 탓에 기어코 묻고 말았다. “이러저러한 책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주제상 네가 껄끄러워할 수도 있을 거 같다. 독서 노트를 써도 되겠느냐.” 그리고 (생각한 대로) 선선히 허가가 내려 왔다. 나도 “읽어보고 껄끄러우면 말해라, 지우겠다”하고 마무리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결국 성(性)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 둘이 밤에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는 그런 이야기. 당연히 혼자만의 이야기일 수가 없으니, 여자친구의 허락이 필요했던 셈이다.
사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前 27살 모태 솔로의 컴플렉스에 있다. 단적으로 말해 “작다”. 그것도 자타공인. “그게 안 보여! 여자인가 봐!”하는 소리도 들은 적 있다. 당시에는 남자들뿐이라 어영부영 웃어 넘겼다마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성희롱도 이런 성희롱이 없다.
물론 사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애시당초 별달리 성욕 같은 게 큰 편도 아니었고, 혼자 하는 것도 두 달 가량 손도 안 댄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평생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 괜찮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녀석이 덜컥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혼전순결 같은 고상한 소리를 하는 타입도 아니니, 당연히 그렇고 그런 일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컴플렉스가 있는 마당에 잘 될 리도 없다. 이런저런 책을 찾아보는 이유다.
…………………나는 지금 대체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 걸까. 늘 하던 “독서의 계기”인데 묘하게 머쓱해지고 만다. 이 또한 “터부”이기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다.
그런 백스토리와 별개로, 책은 정말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사실 아예 한 줄로 요약할 수도 있는 책인데, 그말인 즉슨 “대화와 소통”이란다. 늦은 밤에 펼친 사람이, 혹은 내 여자(또는 내 남자) 만족시켜주려 펼친 사람이 조금 실망할 수는 있지 싶지만… 그럼에도 밤의 관계를 너머, 또 커플을 너머,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사안 아닐까 싶다. 소위 기술 등의 이야기도 없지는 않지만 실망시키지 않기 위한 자그마한 보너스 정도에 가깝다.
연애도 섹스도, 무엇보다 인간 관계가. 서로 기분 좋기 위해 하는 것일 터이다. 그렇건만 곧잘 서로 자신의 에고를 밀어 붙이며 저 혼자만 기분 좋으려 든다. 반대로 너무 상대만 생각하다 자신의 에고를 눌러 죽이다 이내 터지고 만다. 이윽고 다 같이 좋기 위해 시작된 일이 다 같이 상처 받는 일이 되고 만다. 사람과 사람이란 게 그래서 어려운 걸 테지.
그렇기 위해 같이 생각하고 같이 찾아가고 같이 대화하라고 이 책은 말한다. 먼저 자신과 자신의 에고를 알고, 서로 제시하며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 쉽지는 않지만 연애 관계이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적어도 서로 죽고 못 살아서 시작한 일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어지간한 자기계발서보다도 더 도움이 된 책이기도 하다.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도 고쳐주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침이 되기도 했고. 몇몇 책처럼 잊어갈 쯤에 다시 한 번 읽어두고 싶은 책이 되었다.
밤의 숨소리
성적인 이야기는 그저 농담과 웃음의 소재로만 소비되어 왔습니다. 어쩌다 용기를 내 성욕이나 섹스, 자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라치면 '헤픈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요. 성과 관련해서는 고민을 털어 놓기만 해도 그 자체로 자존심이 상하고 주위의 놀림감이 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회 분위기를 이제는 청춘들이 앞장서서 박살을 내주어야 할 때입니다. 조금 더 뻔뻔하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프롤로그, p6.
고찰점: 크게 무언가를 앞장서서 박살을 낼 생각은 없다. 이 글을 쓰는 것도 늘 하는 일이라서 그런 것이고, 굳이 적지 않아도 됨에도(실제로 몇 권인가 독서노트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쓰는 것은 이 책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의도와 별개로 그런 효과는 있길 바라본다.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오늘, 이 순간, 못 했을 뿐입니다. 두 번째는 더 자연스러울 것이고, 아니면 세 번째, 네 번째에 성공해도 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회를 갖게 될 겁니다. 굳이 '첫 경험'에 집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삽입 자체보다 과정입니다, p32.
고찰점: 처음이랴. 지금 생각해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게 있었던 문제(진성포경)로 거의 한 달 가량을 뒤로 미룬 것, 여자친구의 하얀 거짓말, 첫 삽입 이후의 소동(부랴부랴 달려 간 비뇨기과 등등) 등등. 심지어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내가 울고 여친이 울고 난리도 아니었다. 썰로 풀면 정말로 끝이 없지 싶다. 하지만 지금은 또 어떻게 잘 해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벌써부터 그리고 우습다. 아마 언젠가 먼 미래에 지금 이 글을 보면 그때는 그때 대로 웃고 있겠지. 거 녀석 풋풋했다고.
매일 뺨에 뽀뽀하는 연인이라면 굳이 삽입하지 않더라도, 이제부터는 매일 섹스하는 연인인 셈입니다. 손을 꼭 쥐고 걷는 공원 산책도 이제부터는 섹스입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반복하여 뇌를 세뇌하면, 언젠가는 그 과정이 단순한 삽입 섹스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그렇게 '평생 섹스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성세대는 단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행복한 섹스를 즐기며 말입니다.
섹스는 좋은데 애무는 귀찮은 당신에게, p46.
고찰점: 이게 바로 섹스지. 농담 삼아 하는 말도 마냥 틀리지는 않은 거 같다. 여자친구와 같이 맛있는 한 끼를 먹는 것도 섹스고, 즐겁게 통화하는 것도 섹스고, 하다못해 아침에 모닝콜 카톡을 받는 것도 섹스는 아닐까. 매 순간순간을 즐겁게 사는 건 비단 연애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일도 아닐 터이다.
임플라논은 에스트로겐 성분이 없어 경구용 피임약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의 가능성도 적은 꽤 괜찮은 피임 방법입니다. 다만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어떤 피임법이 적합할지는 병원 진료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추천 피임법 셋, 임플라논. p102
고찰점: 이 임플라논은 지금 생각 중이며, 곧 실제 시술을 앞두고 있다. 여자친구도 나도 걱정이 심한 편이라서 서로 번갈아가며 걱정할 정도인데, 이 시술이 그런 걱정을 조금이나마 줄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다. 아픈 걸 워낙 안 좋아하는 여자친구인데 그래도 고심 끝에 받아들여준 덕에 크게 감사하고 있다.
이처럼 얼굴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향, 철학, 기호가 같으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후략) 오늘부터 연인의 취미, 생각, 가치관 등을 편견 없이 받아 들이고 무조건 닮아보세요. 도대체 누가 이런 연인보다 더 섹시할 수 있을까요? ^^
절대 헤어지기 싫은 좋은 연인이 되는 법, 169p.
고찰점: 사귄지 얼마 되지는 않은 우리 둘이지만 주위에서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단순히 빈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나 스스로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자친구와 공통점이 많은 편이다. 덜렁이라던가 크게 계획성 없는 점이라던가, 상황상황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 성격 등의 부분.(셋 다 내가 조금 더 지수가 높긴 하다. 내가 살짝 더 덜렁이고, 내가 살짝 더 계획성 있고, 내가 살짝 더 민감하다.) 장난스러워서 시도때도 없이 서로 장난치고 웃는 등의 개성. (아마 둘 다 오타쿠라 그런 거겠지만) 괜히 과장스러운 몸짓. 금전적인 부분이나 허영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가치관. 하다못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 취향마저 닮아 있다.
어머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떻게 지랑 또옥같은 걸 만났냐"하실 정도이니 오죽할까.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서로가 좋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금세 친해지고 금세 사귀게 된 데에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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