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책
읽다보면 부러움부터 앞서는 책이 있다. 잘 썼다, 못 썼다, 재미 있다, 없다를 따지기 전에 '아 난 왜 이런 책을 쓸 수 없는가'하고 부러워지는 그런 책 말이다. 이 '자살 가게'란 책이 딱 그렇다. 어쩌면 비슷한 소재를 두고 글을 쓴 적이 있는 탓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이를 쓰기 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 같다. 내 입맛에 딱 맞는 책이다.
자살 가게는 그 파격적인 이름과 달리 "자살하지 말라"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지 흔히 보는(내가 쓴 것도 그렇지만) '주인공 입을 빌려 훈계하는' 작품하고는 좀 거리가 멀다. 먼저 자살 가게란 제목과 내용에 방점을 둔 채, 그 안에 갖은 상상력을 담는다. 아,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자살 방법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이 창의력은 이 책의 반전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 보기 때문에 구태여 예시는 적지 않겠다. 궁금해졌다면 직접 보시라.)
그 후에 세상 밝고 세상 긍정적인 막내를 통해 그걸 한 번 더 뒤집고 휘젓는 식으로 강하게 설파하는 것이다. 네가 죽으려는 그 방법, 조금만 비틀면 마냥 우습기만 한 일이라고. 그런 주인공에 휩쓸려 점점 변모해 가는 자살 가게의 모습을 보다보면 어느 틈엔가 죽음을 보는 시점도 삐뚫어진다. '그래, 기왕이면 블랙 코미디보다는 그냥 코미디가 더 낫지' 하는 식으로.
그런 와중에 그 끝마무리가 더할 나위 블랙 코미디라면, 바꿔 말하자면 주인공이야말로 우중충하고 심보 고약한 자살 가족의 일원이란 걸 깨달을 쯤이라면 이 독한 맛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편으론 남겨진 가족의 삶들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들은 과연 주인공에게 휩쓸리던 시절처럼 살아갈까, 혹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까.
물론 이는 작중 주인공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터이다. 독자들도 책을 덮을 쯤이면 한 번 진지하게 그 내용을 음미해보리라. 또 가족들과 같이 이전으로(아마 책의 제목에 혹할 시점으로) 돌아갈지, 주인공 덕을 톡톡히 보던 책을 읽던 시점에 남을지 고민하는 식으로. 그리고 만약 당신이 후자를 골랐다면... 어딘가에 도움을 청하길 바란다. 기왕이면 확실한 곳에. 두 번 다시 이런 책의 제목에 혹할 일이 없도록.
자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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