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독서노트] 오은영의 화해

noh0058 2024. 12. 2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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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선생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오은영 선생님을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뭐, 그야 이름 정도는 안다. 유명한 사람이고 심리학(?)과 아동학(??) 전문이란 정도. 또 가끔 숏츠나 인터넷 짤로 봤을 때 말을 굉장히 예쁘게 하신다, 하는 수준일까. 물론 그럼에도 이름 정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많은 심리학 책 중에서도 이 책에 손이 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좋은 독서기도 했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책' 같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책을 읽고서 책 같지 않다는 게 꽤 모순처럼 들릴지 몰라도 어떨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존댓말로 적혀 있다. 그게 오은영 선생님의 원래 글 쓰는 스타일인지, 혹은 이 책의 근원이 정신 상담 칼럼에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만약에 선생님의 책을 또 읽게 되면 그때엔 검증해보겠다.)

 어찌 됐든, 마치 잘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적힌 책이다. 그덕에 마치 오은영 선생님을 앞에 두고 상담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혹은 품 넉넉한 어머니가 머리맡에서 읽어주는 책과도 같다. 단순히 존댓말로 적혀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닐 테지. 존댓말로 적힌 책은 수없이 있지만, 이런 감각을 받는 경우는 드무니까. 아마 오은영 선생님의 평소 말투나 됨됨이, 또 인간미가 묻어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또 여지껏 읽은 갖은 심리학책들과 살짝 선을 달리한 듯한 구조도 좋다. 다른 책에서 흔히 역설하는 '저명한 아무개', '유명한 실험', '심리학에서 이름 붙인 효과' 등도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잘 정리된 실천법도 실려 있지 않다. 물론 필자는 그런 내용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역시 어려운 면도 있는 데다가, 너무 역설하는 듯한 느낌도 들어서 "이렇게 해야만 하는구나, 쉽지 않네"하는 생각도 들기 마련이다. 반면에 이 책에서는 가벼운 생각의 방향을 제시해주어 내가 걸어야 할 길을 확실히 해준다.

 그렇게 걸음을 들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그렇게 발을 들였으면 당장은 자그마한 걸음부터 시작하면 된다. 무언가 커다란 나뭇가지가 길을 막으면 그때에 다른 심리학 책이라는 나이프를 들면 되겠지. 첫 걸음을 내딛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만한 책도 없지 싶다.

 

오은영의 화해

 

그런데 감정은 강한데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면 한발 떨어져 볼 수가 없어요. '아, 내가 이런 것으로 인해 이런 영향을 받았구나. 이 영향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됐구나. 그런 것 때문에 내가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구나. 이런 것들이 나의 마음 안에 자리를 잡고 있구나. 이런 마음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이렇게 바라보는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아요, 26p

 

고찰점: 정말 많이 듣는 말이지만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그나마 요즘은 조금 나아진 편이긴 하다. 내가 어떤 감정으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게 얼마나 나쁜 습관인지 알 수 있게 됐으니까. 문제는 그것이 한 박자 늦는다는 걸까. 항상 행동을 하고 나서야 그런 분석이 뒤따른다. 그 간극을 조금씩 줄여가고 싶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과중심적인 양육을 했습니다. 이러한 양육 방식에서 자란 아이는 중간 과정이 중요하고, 또한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게 될 수 있어요.
작은 것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나, 88p.

 

고찰점: 책 내용이야 부모자식 관계, 또 거기서 이어진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와도 별 다를 게 없지 않나 싶어졌다. 지나친 결과 중시 사회 탓에 도전하거나 변화하는 것, 또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간과하게 된 건 아닐까. 학벌, 결혼, 인생 등이 그렇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이 무서운 걸 넘어 비웃음을 사는 경우마저 생겼으니 오죽하랴. 가끔은 인생 전반에 적용시켜봐도 될 말이지 않을까.

 

'해야 한다'가 넘쳐나는 것은 비단 육아뿐이 아니에요. 우리 주변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해야 한다'가 있어요. 가야 한다, 먹어야 한다, 읽어야 한다, 따야 한다, 들어가야 한다, 입어야 한다, 가져야 한다, 있어야 한다, 이뤄야 한다 등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많습니다. 부모는 육아의 '해야 한다'에 치여서, 아이를 사랑할 틈이 없습니다. '해야 한다'에 몰두하다가 정작 '아이'를 놓칩니다. 성인들은 자신 주변에 쏟아지는 일상의 '해야 한다'에 치여서 자신을 사랑할 틈이 없습니다. '해야 한다'에 몰두하다가 정작 '나'를 놓칩니다.
수많은 '해야 한다' 때문에 사랑할 틈이 없어요, 124p.

 

고찰점: 이건 확실히 그렇다. 20대 중에 뭔가를 해야 한다, 가봐야 한다, 자격증 뭐 정도는 있어야 한다. 등등등. 위에서 적은 것처럼 이 역시 결과 중심적이다. 퀘스트처럼 도장이 찍혀야 직성이 풀리는 거겠지. 기왕이면 '하고 싶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먹고 싶다, 가고 싶다, 자격증 정도는 뭐 있으면 좋겠지. 하지만 없으면 말고. 그 탓에 소위 '뒤떨어지면' 또 어떨까.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실감일 테니까.

 

피해의식 밑에 과도한 자의식이 깔려 있는 겁니다. '실은 내가 이성에게 매우 주목받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이성에게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열등감을 느꼈어요. 사람과의 관계가 발생할 때 늘 이성 간의 관계에서 먼저 생각하고 피해의식적인 사고를 하지만, 그 아래에는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바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적 결벽증이 있어요, 아이의 성교육이 고민입니다, 144p.

 

고찰점: 매우매우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거는 요즘 통감하고 있는 일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도 아! 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보고 있는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아... 하고 말았다. 내게 이런 생각을 있다는 걸 어떻게 부정할 수 있으랴. 또 그런 필터를 끼고 있기에 모든 걸 그렇게 해석하려 든다는 것도. 이제는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벗는 일만 남았다. 물론 세상의 필터나 색안경이란 게 쉽게 벗겨질 리도 만무하니, 천천히 아래로 내리는 연습부터 해가야겠다. 지금 이 순간처럼.

 

우리 감정은 자주 길을 잃어요. '걱정'으로 시작해서 '화'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대학을 나오지 못한 부모를 무시해요, 151p.

 

고찰점: 이것도 뜨끔하는 일이 많다. 올해 한 번 부모님이랑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 1차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별로 초조해할 일이 아니었는데 초조해한 걸 제쳐두면, 다음 일을 하기 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마치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아빠가 계속 말을 거니, 그 초조함이 이내 짜증과 화로 바뀐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만큼 화낼 일도 아니었다. 단지 초조함을 다루는 법을 몰랐을 뿐이지. 그게 대략 반 년 전 쯤 되었을까. 먼 듯 가깝다.

 

특히 살아가면서 기분이 나빠지거나 우울해지거나 괴로워지거나 마음이 좋지 않을 때, 언제나 "잠깐만, 잠깐만"하면서 스스로를 멈추고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하고 물어야 합니다. '음, 기분이 좀 안 좋은데, 무시 당한 느낌이 들어. 근데 저 사람이 나한테 그럴 이유가 없는걸'이라는 식으로 생각해 보는 거지요. 그러면 그 생각에 따라서 행동이 바뀝니다.
"이게 그렇게 슬퍼할 일인가?"하고 나와 대화하세요, 261p.

 

고찰점: 노력은 하고 있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또 시작이네, 잠깐 멈출까'하는 생각을 하는 빈도 자체는 제법 늘어난 거 같다. 그 덕에 생각의 빈도는 줄긴 했다. 생각의 크기나, 그 뿌리 자체는 좀 줄어들긴 했어도 마냥 떨쳐내지 못한 듯해도. 뭐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니까.

 

내일을 잘 살아가려면 오늘이 끝나기 전 '나'를 용서하세요. '내' 마음의 불씨를 끄는 것이 용서입니다. 오늘 생겨난 불씨는 오늘 그냥 꺼버리세요. 그 작은 불씨를 끄지 않으면, 불씨는 어느 틈에 불길이 되어 당신 마음의 집을 다 태워버릴지도 모릅니다.
매일 잠들기 전, 나를 용서하세요, 318p.

 

고찰점: 사람 심리란 게 참 무섭다. 안 하려 할 수록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되고, 남이 하지 말라고 할 수록 괜히 하게 된다. 생각이 떠오르는 빈도가 사람을 이끌고, 싫어했던 자신은 더욱 증폭되고 만다. 그럴 바에야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나의 불쾌한 생각을 그러려니 하고, 잠깐이나마 잊게 둔다. 그리고 떠오를 때면 잠깐 경계를 하고 떠나보낸다. 그렇게 버스를 보내다보면 언젠가 이용객이 적어져 폐선이 되리라. 그러면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가야 할 올바른 길을 향해 걷게 된다. 조금 느리지만, 언젠가 잘못된 버스와 달리 마땅한 길에 걸음을 멈추게 되리라. 그 걸음의 이름이 바로 '용서'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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