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
어쩌면 가해자의 시선도
나는 왕따 피해자였다. 샌드백 취급도 당해봤고, 없는 사람도 되어봤고, 심지어는 선생까지 똘똘 뭉쳐 놀림도 받아봤다.(뭐 마지막에 한해서는 나 스스로도 잘못을 인지하고는 있지마는.) 그탓일까. 나는 중학교 시절의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즐거웠던 기억들이나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정도일까. 당시의 사건, 경위, 무엇보다도 감정을 떠올릴 수 없다. 말하자면 기억에 뚜껑을 덮어두고 있는 셈이다.
그덕(?)인지 차라리 편할 때는 있다. 의외로 PTSD 같은 게 없단 뜻이다. 중학교를 벗어나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좋은 친구도 사귀었고, 원하는 학과와 직업까지 성취한 지금에 이르러서 굳이 불쾌한 과거 따위에 매달릴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는 굳이 기억하지 못하는 게 속이 편하다.
물론 마냥 편하지는 않다. 불과 얼마 전에도 친구들의 친근하고 짓궂은 장난 탓에 손발이 떨리는 나를 발견해 버렸을 정도니까.(물론 그 자리에서 말했고, 그들은 내 뜻을 존중해 주었다.) 결국 나 하기에 달렸지만, 그럼에도 내 뿌리 속에 무언가 깊게 뿌리내려 있는 건 분명한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발견한 게 이 책이다. 구매까지 이르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해자들의 시선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싶었던 건지, 미래에 있을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던 건지, 혹은 가해자라는 딸이 통쾌하게 혼나는 걸 보고 편해지고 싶은 건지. 하나 확실한 건 단순히 직감으로 “사야겠다!!!” 싶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무의식중에 바란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가해자들 당사자의 시선이나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부모들의 시선으로 그 사건과 겉으로 드러난 아이들의 표정만이 담겨 있었다. 미래의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힘들 듯하다. “아이를 잘 이해하자”라는 말 정도로, 아이와 떨어져야만 하는 시간이 많은 현대 부모에게는 어려운 주문 아닐까 싶었으니까. 가해자가 당하는 통쾌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말로 못할 찝찝함과 끈적함만이 남을 뿐이다.
온전히 부모의 시선만을 쫓는 이 책은 어쩌면 인간 본연이 가진 공포 그 자체를 다루는 것만 같았다. 세상은 1인칭이다. 이것만은 어떤 시대가 와도 극복할 수 없으리라. 때문에 상대의 생각을, 과거를, 시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겉으로 보여주는 것만을 알 뿐이다. “우리 반은 다 사이 좋아”하고 순수하게 웃는 아이의 겉면만을.
가해자의 어머니인 주인공은 과거에 왕따 피해자였다. 작품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문득문득 과거에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과 딸을 겹쳐 보게 되리라. 그 죄를 짊어지고 가리라 각오했어도. 아니, 각오했기에 더더욱.
그럼에도 부모이기에, 자식이기에, 떨쳐낼 수 없는 사랑이 있기에 딸과 마주하고, 딸의 변화를 돕고(변화시킨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모든 인간 관계가 그렇듯.), 딸과 소통해 가야만 하리라. 제3의 자신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생각한만큼 무거웠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끈적하고 버거운 책이었다. 책을 다 덮을 쯤에는 시끄러운 지하철 안임에도 불구하고 책에 몰두해 가슴과 배의 중간 사이가 강하게 뭉치는 듯한 불쾌함마저 느꼈다. 아마 읽는 사람에 따라 강렬하게 반응이 갈릴 책은 아닐까.
평소 감정 이입이 강한 편이라면, 또 주위 시상에 괜히 어두운 시선을 보내고 싶지 않다면 그리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무게감과 마주할 자신이 있다면… 올해 읽은 책 중에서도 손 꼽아 추천할 수 있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내 딸이 왕따 가해자입니다